TCEW Tutor Chung’s English World

TCEW(Tutor Chung's English World)에서 출간한 교재를 소개합니다. Tutor Chung's Vocabulary를 공부하면서 막힘 없는 수능 영어 독해Tutor Chung's Reading Practice 1/2/3/4 순서로 공부하면 가장 좋습니다.

영시의 이해와 감상 (1) - Introduction & William Shakespeare's Sonnet 18

IB Diploma Programme을 이수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고전하는 과목이 바로 IB English A Literature나 IB English A Literature and Language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AP English Literature and Composition이나 AP English Language and Composition에서도 5점 만점을 받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SAT Digital에서도 시와 소설과 희곡 텍스트가 지문이나 답으로 출제되기 때문에 문학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학창 시절 피할 수 없는 난관 중의 하나가 바로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문학입니다.

일정 시간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르는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언어나 문학은 나름대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글쓰기를 형벌처럼 생각하는 요즘 학생들로서는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언어나 문학 수업에 들어가지만 실제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는 한탄 속에 학기와 학년을 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언어나 문학은 재미가 없는 과목일까요?

친구들과 외계어 수준의 은어를 사용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을 싫어하는 학생이 없고, 직접 랩을 부르지는 않더라도 랩을 들으면서 라임과 플로우와 펀치라인을 즐기지 않는 학생도 없습니다. 약동하는 청춘의 의사소통 욕구는 기성 세대의 언어를 답습하는 것만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언어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시대와 상황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시대와 상황이 변하는 것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은 사회는 아무리 문명과 기술이 발달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라임(rhyme)과 플로우(flow)를 영시에서는 각운(rhyme)과 음보(meter)라고 하고, 펀치라인(punch line)을 영시에서는 시적인 통찰(poetic insight)라고 합니다.

젊음 자체가 언어 친화적이고 문학적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시인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급격하게 성장이 이루어지는 사춘기 청소년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입니다. 젊은 학생들에게는 이미 언어적 소질과 문학성이 충분히 잠재해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잠재해있는 언어적 소질과 문학성을 발현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계기입니다. 지금부터 연재하는 글이 학생들 속에 숨어 있는 언어적 소질과 문학성을 싹 틔우는 조그만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 그 중에서도 서정시(lyric)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서정시란 무엇일까요? 서정시는 소설과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는 분명히 소설책의 문장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주동인물(protagonist)와 반동인물(antagonist)이 등장하여 갈등하고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정시를 읽을 때는 분명히 어떤 시인이 쓴 시임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작사하고, 다른 사람이 작곡하고, 심지어 다른 가수가 부른 노래를 내가 부를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노래를 부른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서정시는 기본적으로 혼잣말이고, 완성된 서정시에 시인은 개입하지 못합니다. 완성된 서정시는 오로지 그 서정시를 소리 내어 읽는 독자의 것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들을 때, 가사가 마치 내가 겪은 일이고 내 사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노래를 부를 때, 마치 자신의 사연처럼 절절하게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그 친구의 노래 실력이나 음악적 능력과 상관없이 그 친구의 노래에 감동을 받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노래의 가사에 감정이입을 하고, 나아가 노래의 가사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 그 자체가 되는 것이 바로 서정이라는 문학 갈래의 특징입니다.

사랑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가사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지를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잘 드러났는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서정시 역시 세계의 실제 모습을 정확하게 반영했는지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세계를 왜곡하더라도 시인이 바라본 세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그리고 일단 시인의 마음이 세계를 파악하여 표현하면, 다시 말해서 서정시가 완성되면, 세계는 서정시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조동일 선생님의 정의에 따르면, 서정은 “작품 외적 세계의 개입이 없는 세계의 자아화”입니다. 참고로 서사시(epic)는 소설의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문학 갈래인 서사에 속합니다.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서정이라는 문학 갈래, 혹은 서정시가 무엇인지 조금은 감이 잡힐 것입니다. 그러면 영문학에서 서정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네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희극과 비극의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소네트 시인으로서도 유명합니다. 소네트(sonnet)는 르네상스 시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 형식이었습니다. 엄격한 운율과 각운을 지닌 14행의 정형시인 소네트는 13세기 시칠리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인 팔레르모에서 시작되었지만, 곧바로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노래(sonetto)”라는 의미를 지닌 소네트는 르네상스 시기 낭만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정형시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소네트 시인은 페트라르카였고, 영국의 소네트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페트라르카의 영향으로 확립된 영국의 소네트를 이탈리아식 소네트(Italian sonnet), 혹은 페트라르카식 소네트(Petrarchan sonnet)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시인의 시인(poet’s poet)”이라고 불린 에드먼드 스펜서는 스펜서식 소네트(Spenserian sonnet)를 창안했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식 소네트(Shakespearean sonnet)를 창안했습니다.

먼저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를 분석하고 감상해보겠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소네트는 1번부터 154번까지 번호를 붙여 1609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지만, 희곡 작품 속에도 6편의 소네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소네트는 18번입니다. 먼저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셰익스피어식 소네트는 4행 연구(quatrain, 四行聯句)가 3번 반복되고, 마지막에 2행 연구(couplet, 二行聯句)가 이어집니다. 첫 번째 4행 연구와 두 번째 4행 연구에서 하나의 주장(thesis)이 제시되고, 세 번째 4행 연구에서 반론(antithesis)이 제시되고, 마지막 2행 연구에서 종합(synthesis)이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하나의 의견을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 의견을 반박하고, 세 번째 사람이 두 의견을 종합하는 대화식 구조(dialectic structure, 변증법적 구조)를 갖습니다.

영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운율은 약강 5음보(iambic pentameter)이고, 대부분의 소네트도 강세가 없는 음절 다음에 강세가 있는 음절이 5번 이어지는 약강 5음보, 혹은 단장 5음보로 이루어집니다. 약강 5음보를 쉽게 느끼려면, “du”는 약하고 짧게 “dum”은 강하고 길게 발음하여 “du-dum/du-dum/du-dum/du-dum/du-dum”이라고 말해보면 됩니다. 예컨대, “Shall I / compare / thee to / a sum / mer’s day”처럼 /약-강/이 5번 반복됩니다. 볼드체로 강조하지 않은 발음되는 모음은 약하고 짧게 읽고, 볼드체로 강조한 모음은 강세를 넣어서 강하고 길게 낭독하면 됩니다. “오각형(pentagon)”에서 알 수 있듯이 “penta”는 “5”를 의미합니다. “meter”는 “음보”라는 의미입니다. “iambic”은 “약강”, 혹은 “단장”을 의미합니다.

그럼 약강 5음보에 맞추어 시를 읽어볼까요?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

훨씬 더 생동감이 있지 않나요? 그리고 영국 소네트의 특징은 각운(rhyme)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식 소네트의 각운은 “abab + cdcd + efef +gg”로 이루어집니다. “(d)ay”와 “(M)ay”가 “a”이고, “(temper)ate”와 “(d)ate”가 “b”입니다. “(sh)ines”와 “(decl)ines”가 “c”이고, “(d)immed”와 “(untr)immed”가 “d”입니다. “(f)ade”와 “(sh)ade”가 “e”이고, “ow’st”와 “(gr)ow’st”가 “f”입니다. 마지막으로 “(s)ee”와 “(th)ee”가 “g”입니다. 약강 5음보라는 운율을 맞추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각운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휘력이 정말 풍부해야 하겠지요.

이제 한 행씩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에서 “thee”는 “thou”의 목적격이자 여격입니다. “thou”는 “you”의 고어(중기 영어, ME, Middle English, 115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사용되던 영어)입니다. “thou”의 소유격이 “thy”입니다. “여름날(summer’s day)”은 일반적으로 “완벽한 날(perfect day)”을 의미합니다. 의문 부호(?)가 붙는 것은 이 문장이 수사 의문문(rhetorical question)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은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 행에 나옵니다.

“Thou art more lovely and more temperate”에서 “art”는 “are”의 고어(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온화한(temperate)”은 “온건한”이나 “차분한”이나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고른 날씨의”라는 의미입니다. 그대는 여름날보다 더 사랑스럽고 더 온화하기 때문에,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할 수 없습니다. 다음 행부터 여름날의 결점이 나열됩니다.

“Rough winds do shake the darling buds of May”에서 “do shake”는 약강의 운율을 맞추고 강조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And summer’s lease hath all too short a date”에서 “hath”는 “has”의 고어(3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대여(lease)”는 날짜나 만료 기한으로 제한되는 일시적인 법적 소유를 의미합니다. 영국에서 날씨가 가장 화창한 5월은 가끔씩 사나운 바람이 불어 아름다운 장미꽃 봉오리를 흔들고, 결정적으로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Sometime too hot the eye of heaven shines”에서 “하늘의 눈(the eye of heaven)”은 “태양(the sun)”을 의미합니다. “And often is his gold complexion dimmed”에서 “안색(complexion)”은 “얼굴”이나 “얼굴색”을 의미합니다. “his”를 쓴 것은 태양을 의인화(personification)했기 때문입니다. 5월의 여름날은 때로는 햇살이 너무 따갑고, 때로는 먹구름이 해를 가립니다.

“And every fair from fair sometime declines”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 언젠가 아름다움을 잃는다”는 의미이고, 태양의 황금빛 안색이 지닌 아름다움이 흐려지는 것과 이어집니다.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 untrimmed”에서 “by chance or nature’s changing course”는 “우연이나 필연에 의해서”라는 의미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자연은 항상 변하고, 자연의 변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의 변하는 과정은 필연입니다. “untrimmed”는 “깔끔함이나 우아함을 잃은”이나 “장식품을 빼앗긴”이라는 의미입니다. “untrimmed”는 성서의 요한 계시록 21장 2절(Revelation 21: 2)에서 유래합니다. “And I John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e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trimmed for her husband.” 여기까지가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할 수 없다는 주장(thesis)입니다.

“But thy eternal summer shall not fade”에서 “thy”는 “your”의 고어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반론(antithesis)을 제시합니다. “Nor lose possession of that fair thou ow’st”에서 “ow’st”는 약강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ownest”에서 “e”를 뺀 것입니다. “ownest”는 “own”의 고어(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소유(possession)”은 4행에 나오는 영구적이 아닌 “대여(lease)”와 대조되는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완전히 향유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소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절대적으로 영원히 소유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통제권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Nor shall death brag thou wander’st in his shade”에서 “wander’st”는 약강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wanderest”에서 “e”를 뺀 것입니다. “wanderest”는 “wander”의 고어(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his”를 쓴 것은 죽음을 의인화했기 때문입니다. “자랑하다(brag)”는 심하게 떠벌리고 폼을 재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성서의 시편 23장 4절(Psalm 23: 4)에서 유래합니다. “Yea, though I should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thou art with me: thy rod and thy staff, they comfort me.”

“When in eternal lines to time thou grow’st”에서 “영원한 지속(eternal lines)”는 “지속되는 시행”과 “영원히 지속되는 가계와 후손”을 의미합니다. “grow’st”는 약강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growest”에서 “e”를 뺀 것입니다. “growest”는 “grow”의 고어(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to time thou grow’st”는 그대가 시간의 살아 있는 부분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grow to”는 유기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이 된다는 의미도 되고, 이식되거나 접목된다는 의미도 됩니다. 여기까지가 그대가 영원한 시행과 후손의 일부가 되면, 그대의 영원한 여름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가 소유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그대의 영혼은 죽음의 그림자에서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입니다.

“So long as men can breathe or eyes can see”에서 “사람들(men)”을 복수형으로 쓴 이유는 후손까지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So long lives this, and this gives life to thee”에서 “이것(this)”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this sonnet)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2행 연구에서 주장과 반론의 종합(synthesis)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 숨쉬거나 세상을 볼 수 있는 한, 소네트는 생명력을 지닙니다. 소네트를 통해서 영원한 삶을 만날 때, 그대는 5월의 여름날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합니다.

어떤가요? 자세히 읽어보니 처음 막연하게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요? 많은 학생들이 이 소네트를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소네트에 나오는 “그대(thou)”를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셰익스피어의 후원자라는 주장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출판해주는 출판업자라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이 엇갈립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네트의 “그대”는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공연하고, 돈을 투자하여 운영하는 극장을 찾는 유료 관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셰익스피어의 극단과 극장이 파산하지 않으려면 하루에 대략 1,500~2,000명의 유료 관객을 모아야 했습니다. 다른 극단이나 극장과의 경쟁도 치열했고요. 셰익스피어에게는 관객 한 명 한 명이 정말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애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여왕부터 극장에 처음 온 시골뜨기까지 모든 관객의 취향을 만족시켰지만, 관객에게 아부하지는 않았습니다. 관객은 분명 5월의 여름날보다 사랑스럽고 온화한 존재이지만,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연극과 소네트가 관객과 독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5월의 여름날은 셰익스피어가 날마다 치열하게 희곡을 쓰고, 공연을 하고, 관객을 끌어 모으고, 때로는 환호하고, 더 많이 좌절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셰익스피어에게 그대는 관객이고, 소네트를 읽는 독자인 바로 여러분입니다. 셰익스피어는 문학은 세상에서 나왔지만, 세상보다 아름다운 영원한 삶을 약속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소네트는 전례 없는 문학 예찬이고, 자신의 연극을 보는 관객과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시인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전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은 하버드 대학의 영문학 교수이자 노튼 앤솔로지의 편집 주간인 스티븐 그린블랏(Stephen Greeblatt)이 쓴 “세상 속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되었나(Will in the World: How Shakespeare became Shakespeare)”(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04)입니다. 이 책 제목의 윌(Will)은 윌리엄의 애칭이기도 하지만, 의지(volition)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때의 의지는 세상을 향한 윌리엄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윌리엄을 향한 세상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 소네트의 해석은 “The Oxford Shakespeare: The Complete Sonnets and Poems edited by Collin Burrow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