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명문 대학 산책 (1) - 옥스퍼드 대학 PPE 전공 과정
01 Jan 2023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시달리는 기성 세대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지만, 정작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알아듣기는 해도 실천은 따르지 않은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예전에 저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 중 한 명도 중학교 시절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기는 했지만, 아주 열심히 공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열심히 하지는 않은 탓인지 그 학생은 외고 입학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외고 편입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4월에 외고에 편입했는데도 의외로 외고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다음 시간이 체육으로 바뀐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깨어나보니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있기도 했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는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오카리나를 불곤 했답니다. 나중에 유학반에 합류하여 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유학반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을 별다른 성과 없이 보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서도 그 학생은 계속 저와 함께 공부했고, 겨울방학 중 어느 날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차를 마시고 있던 저에게 다가와 느닷없이 “선생님, 저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말에 마시고 있던 차를 쏟을 정도로 놀랐지만, 일단은 “그래, 열심히 해보렴”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학생은 그 이후로 정말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생이 대통령이 되려고 결심하자 정치와 법/경제/사회∙문화 같은 과목뿐만 아니라 윤리와 사상/생활과 윤리/한국 지리/한국사/세계 지리/세계사 같은 사회 과목이 중요해졌습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니까요. 그리고 영어는 물론 국어도 중요한 과목이 되었습니다.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연설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려면 필요한 과목이니까요. 그리고 국가의 미래가 과학과 기술에 있는 만큼 수학과 과학도 잘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생은 50대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50대에 대통령이 되려면 40대에 장관이 되어서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고, 40대에 장관이 되려면 30대에 국회의원이 되면 좋고, 30대에 국회의원이 되려면 20대에 법조인이 되면 유리하고, 20대에 법조인이 되려면 서울법대(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야겠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서울법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아주 열심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 학생은 그 뒤로 정말로 아주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법대는 아니지만 서울법대만큼 좋은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대통령이 아닌 다른 꿈을 쫓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맹렬하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꿈을 꾸기 시작하는 순간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뀝니다. 자신의 꿈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꿈을 꾸는데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세계 명문 대학 산책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대학과 전공 과정은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정치∙경제(PPE;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전공 과정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은 러시아의 10월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20년대 처음 개설되었습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인재를 키우려면 세분화된 전공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PPE 전공 과정은 문자 그대로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전공 과정입니다. 융합 전공은 개별 전공을 단순히 모아 놓은 것이 아닙니다.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을 각각 3년씩 총 9년간 배운다고 해서 융합 전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의 기초 지식은 알아야 하지만, 학제간의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통찰력과 사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필 수 있는 유연성입니다.
현대 사회의 모든 정치 문제는 결국 경제 문제이고, 모든 경제 문제는 다시 정치 문제입니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정치적 자율성 회복이라는 정치 문제이기도 하지만, 유럽 연합이라는 관세 동맹에서 탈퇴하는 경제 문제이기도 합니다. 불평등은 대중영합주의(populism)가 기승을 부리는 정치적 원인이지만, 생산성이 저하되고 조세 개혁을 방치한 경제적 결과이기도 합니다. 기후 문제는 정치적 결단과 경제적 동기 부여가 조합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철학은 모든 판단과 행동에 굳건한 토대를 제공합니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적 입장의 차이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라는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이어지고, 정치적 입장의 차이는 선호하는 경제 정책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융합 전공은 전공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지만, 깊은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닙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이 다른 대학의 융합 전공과 다른 점은 튜토리얼을 통해서 깊은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6~8개의 강의(lecture)에 출석하고, 2~3개의 튜토리얼(tutorial)과 클래스(class)에 참여합니다. 교수가 진행하는 강의는 특별한 수강 인원 제한 없이 강의실이 허용하는 만큼 원하는 학생들 모두가 출석할 수 있지만, 튜토리얼은 튜터 1명과 2~4명의 학생으로 구성됩니다. 주로 논문 작성법을 배우는 클래스는 6~10명의 학생이 참여합니다.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은 개별적인 기숙사 겸 학문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칼리지(college)가 모여 대학(university)을 구성합니다. 신입생은 칼리지 단위로 선발하지만, 졸업은 대학 단위로 시키기 때문에 각 칼리지는 우등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여 칼리지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경쟁합니다. 다른 전공의 학생들로 구성되는 칼리지와 전공에 따른 학과(department)는 학생들에게 이중의 소속감을 주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합쳐서 부르는 옥스브리지의 가장 큰 특징은 칼리지 제도라기 보다는 튜토리얼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튜토리얼이라고 부르지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슈퍼비전(supervision)이라고 부릅니다.
옥스브리지 학생들은 대학에 소속된 교수(professor)가 진행하는 강의에서보다 칼리지에 소속된 튜터(tutor)가 진행하는 튜토리얼에서 더 많은 것을 더 깊게 배웁니다. 튜토리얼은 튜터 1명과 학생 2~4명이 매주 한 시간씩 만나서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튜터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 지도를 받는 것은 아니고, 지난 시간 튜터가 소개한 참고 문헌을 읽고 튜터가 정해준 주제로 에세이를 작성하여 튜터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읽는 것입니다. 학생의 에세이 낭독을 들은 튜터는 필요한 논평과 수정을 해주고, 다음 주의 주제와 참고 문헌을 제시합니다.
흔히 서양이라고 불리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학문에 접근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먼저 플라톤식 접근은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특정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제시된 의견에 모순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따지면서 학문의 기초를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식 접근은 특정한 분야에 축적된 선대 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한 다음, 선행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개진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식 접근은 학문하기 그 자체를 배우는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식 접근은 지식과 비판적 사고를 배우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진행되는 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학문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독일어로 “앞에서 읽기(Vorlesung)”라고 부르는 강의는 교수가 특정 주제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 앞에서 천천히 읽은 다음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한 학기나 두 학기의 강의가 끝나면, 교수는 내용을 수정하여 책으로 출판합니다. 물론 요즘에는 원고를 읽는 교수는 거의 없고,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동원하여 선행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해진 주제를 놓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끼리 논의를 하는 토론 수업(seminar)은 플라톤식으로 학문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토론 수업은 소규모로 진행될수록 좋습니다. 튜토리얼은 소크라테스가 주요 대화 상대자 1명과 논의를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의 자가당착을 드러내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Socratic dialectics)을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학생이 작성한 에세이를 읽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입니다. 주장 속에 모순이 있으면 주장은 무너집니다.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던 소크라테스가 안다고 자부했던 많은 대화 상대자의 의견 속에 숨겨진 모순을 밝혀낸 것처럼, 튜토리얼에 참석한 튜터와 학생들은 다른 학생이 써온 에세이를 들으면서 주장에 모순점이 있는지를 살핍니다. 에세이를 작성한 학생은 자신의 주장에서 모순을 줄이면서 학문의 본질에 다가갑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은 흔히 일곡지사(一曲之士)라고 불리는 전문가 바보(Fachidiot)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지식을 갖추고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에 다른 분야는 모르는 전문가가 도구적 합리성을 극대화시키면서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반성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자리잡았습니다. 옥스브리지의 학부 교육 자체가 전문가 양성보다 제너럴리스트 양성에 주력하지만, PPE 전공 과정은 사태의 핵심을 파악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의 자질을 함양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대학 시절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을 아우르는 통찰력과 다른 시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유연성을 기른 학생은 정치는 물론 정부와 기업과 금융과 언론과 교육과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NGO)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은 100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5명의 영국 수상을 배출했고,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수많은 정치인과 정부 관료와 기업인과 금융인과 언론인과 교육자를 배출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을 간단하게 소개한 목적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고 폭넓게 공부할 것을 권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래의 지도자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혹은 이제부터라도 미래의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고등학교 시절 AP Calculus, World History, US History, European History, US Government and Politics, Comparative Government and Politics, Microeconomics, Macroeconomics를 공부하면서 수학 실력을 쌓고, 역사와 정치와 경제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바랍니다. 수학은 경제학 공부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철학의 선행 과목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을 염두에 두고 공부해나가면,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에 입학하거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을 융합하여 전공할 수 있습니다. 가끔씩 특정 전공을 미리 정해서 입학해야 하는 한국 대학의 편협함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한국의 주요 대학에 개설된 융합 전공, 혹은 연계 전공에서 PPE를 공부하면 좋을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은 1학년 과정을 마치고 2학년과 3학년 때 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을 모두 공부하는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세 전공 중에서 학생의 선택에 따라 두 전공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학이나 국제정치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유연한 전공 선택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도 마찬가지이고, 다른 대학의 융합 전공이나 연계 전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옥스퍼드 대학의 PPE 전공 과정에서 입학 허가를 받고, 입학 후에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뜻을 펼치는데 필요한 최고급 영어 실력을 쌓고 싶은 학생들에게 “Tutor Chung’s Reading Practice 1/2/3/4”를 추천합니다. 철학/역사/정치/경제/사회/과학/기술 분야의 다양한 텍스트로 구성된 “Tutor Chung’s Reading Practice 1/2/3/4”는 옥스브리지와 아이비 리그 학생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영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SAT 1600점 만점을 받는 방법”을 참조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