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European History (1) - 간략한 소개
25 Nov 2016많은 AP(Advanced Placement) 과목 중에서 인문사회계열의 전공을 지망하는 학생에게 가장 어렵고 힘들면서도 가장 풍성한 결실과 보람을 선물하는 과목은 역시 AP European History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이과 쪽의 AP Physics가 문과 쪽의 AP European History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서양 문명사, 그 중에서도 서양 문명 최대의 성취인 근대성(modernity)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과목이기 때문에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모든 전공 과정에서 필수적인 과목입니다. 1450년부터 현재까지의 유럽사를 개관하면서 유럽사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개념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대학에서 배우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대강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P 과목 중에서 가장 쉽다고 소문난 AP Psychology에 비해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이 응시하는 AP Microeconomics나 AP Macroeconomics에 비해서도 월등히 어려운 과목이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경제학을 전공한다고 해도 훨씬 도움이 되는 과목이 바로 AP European History입니다. 그 때문에 AP Microeconomics와 AP Macroeconomics 두 과목에서 모두 5점을 받은 성적보다는 AP European History 한 과목에서 4점을 받은 성적이 미국의 명문 대학 입학 전형에서 더 유리합니다. 그 학생이 경제학 전공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렇다고 AP Psychology, Microeconomics, Macroeconomics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대학 4년 내내 공부해도 충분치 않을 주제와 분량을 불과 1년 정도에 마쳐야 하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공부하기는 당연히 버겁고 힘듭니다. 일단 읽어야 할 1차 사료와 관련된 책과 논문의 분량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역사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관점을 정립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하는 내내 헤매게 됩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여 애썼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시험장에 들어가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펼치지 못해 5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데도 3점에 받는데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리대학(Faculty of Arts and Sciences)의 학부과정과 일반대학원(Graduate School of Arts and Sciences)은 물론, 장차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과 경영전문대학원(Business School)과 행정전문대학원(School of Government)에 진학하려는 학생 모두에게 필요한 기초 지식과 통찰을 제공해주는 과목이기 때문에 미국의 명문 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시험입니다. 서울대나 연세대나 고려대 같은 우리나라 대학의 재외국민 특별전형에서도 AP European History 성적을 제출하는 학생은 함부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서울대나 연세대나 고려대 같은 우리나라 대학의 재외국민 특별전형에서는 AP European History 성적이 4점 이상이면 그것 하나만으로 그 학생을 합격시켜도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AP European History에서 4점 이상의 성적을 받은 학생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SAT를 보아도 New SAT 기준으로 1500점 이상의 성적은 받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학생에게는 TOEFL 성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런 학생은 영어로는 물론이고, 우리말로 글을 써도 아주 훌륭한 글을 씁니다. 한마디로 이런 학생은 대학에 입학한 다음에, 그리고 졸업한 다음에 무엇을 해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학생을 놓치는 것은 대학의 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인생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는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부지런히 책을 읽으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학생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런 방법은 자신도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읽는 책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도저히 손에 놓을 수 없을 정도이고,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궁금해서 밤을 새워서라도 계속 책을 읽고 싶다면 어떨까요?
유럽사(European History)가 바로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정말로 그럴까 하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AP European History를 함께 공부한 학생들 모두가 그랬으니까요.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는 첫 수업 시간부터 교재와 복사물의 무게와 두께에 한숨을 쉬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음 시간 예습을 위해 책을 읽지만, 끊임없이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부터 아무리 정독을 해도 구분이 되지 않은 역사적 관념까지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시작했어도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유럽사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됩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재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계의 기원은 중세 말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유럽의 근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모두가 그 기원을 찾아보면 바로 유럽의 근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헬라스인이다”라는 명제 이상으로 “우리 모두는 근대 유럽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AP European History에서 요구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과거사(過去史)는 지금사(只今史)에 대한 관심에 따라 해석될 수 밖에 없고, 미래사(未來史) 역시 지금사에 대한 통찰 없이는 전망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무척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토론을 진행하다 보면 지금까지 제가 한번도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참신한 발상과 시각을 학생들이 먼저 제기하곤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물론, 우리 자신까지 직조해낸 유럽 근대사는 그 역사적 전개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가장 잘 연구된 역사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 기술 방식 자체가 세련되고 정교합니다. 그만큼 학문적 수준(scholarship)이 높다는 말이고, 학문적 수준이 높을수록 더 많은 통찰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럽 근대사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선명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유럽이라는 무대에 차례로 등장하여 자신의 몫을 다하는 인물이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것을 마치 한 편의 연극이나 영화처럼 감상할 수 있습니다.
AP European History에서는 유럽 근대사를 (1) 유럽과 세계의 관계, (2) 빈곤과 번영, (3) 객관적 지식과 주관적 이상, (4) 국가와 다른 권력 기관, (5) 개인과 사회 라는 테마로 구분하고, 다시 (1) 제1기 c.1450~c.1648, (2) 제2기 c.1648~c.1851, (3) 제3기 c.1851~c.1914, (4) 제4기 c.1914~현재 의 역사적 시기로 나눕니다. 다섯 테마 각각에 다양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테마에 따른 학습 목표를 네 역사적 시기에 등장하는 관련된 주제와 연결시키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스스로 개념을 잡아가도록 유도합니다. AP European History의 학습 목표와 관련된 주제는 모두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AP European History는 문제를 미리 공개하고 치르는 시험입니다.
AP European History의 시험 형식은 (1) 4지선다형 55문제(55분, 40%), (2) 단답형 4문제(50분, 20%), (3) 자료 분석 논술 1문제(55분, 25%), (4) 에세이 쓰기 1문제(질문은 양자택일, 35분, 15%) 입니다. 문제 형식만 봐도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입니다. AP European History는 여러분이 대학에 입학하는 데는 물론이고 여러분 삶 전체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디 두려워하지 말고 책을 펴고 한 줄 한 줄 읽어나가기 바랍니다. 아래에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기 위해 제가 사용하는 기본 교재를 소개합니다.
(1) Joshua Cole & Carol Symes, Western Civilization (New York: Norton, 2014) [1941년 초판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18판까지 출판되었습니다. “Chapter 10 The Medieval Age 1250~1350”까지는 AP European History의 시험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고대와 중세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알아 둘 필요는 있습니다. 다양한 지도와 사진은 물론,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하여 1차 사료에 나타난 상이한 시각과 역사 기록 이외의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하여 유럽사 전반의 전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학 교재의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책입니다.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물론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한번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2) Clive Emsley & Gordon Martel (ed.), Seminar Studies in History [1988년부터 영국의 Longman Group에서 출판되었다가 1999년부터는 영국의 Pearson Education Limited에서 출판되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가까운 도서관이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여 어떤 책들이 출판되었나 살펴보고 (1)의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참조하면 좋습니다. 특히 책 말미에 중요한 1차 사료를 영어로 번역하여 수록해 놓았기 때문에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3) Eric Hobsbawm, Age of Revolution 1789~1848 , Age of Capital 1848~1875 , Age of Empire 1875~1914 , Age of Extremes 1914~1991 (New York: Vintage) [1962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Eric Hobsbawm의 유럽 근현대사 4부작입니다. Eric Hobsbawm은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역사가이지만, 그의 책은 그 객관성과 통찰력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재미있는 현상이지만, 의외로 미국의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는 좌파 학자가 많고, 그래서 그런지 AP European History 역시 우파적이라기 보다는 좌파적입니다. 우파나 좌파를 떠나서 이 책들은 유럽근대사를 이해하려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필독서이니 꼭 읽기 바랍니다. 저자인 Eric Hobsbawm이 엄청나게 박학다식하고 유머러스한 분이어서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차 사료와 책과 논문을 읽어야 합니다. 위의 (1)~(3)은 그야말로 AP European History를 공부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목록에 불과합니다. 다음 글에서 좀 더 정확한 참고 문헌과 함께 AP European History의 학습 목표와 그에 관련된 주제를 설명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