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어휘 산책 (1) - 영어의 특징
17 Nov 2016세상에는 수 많은 언어가 있지만, 그 언어들의 기원을 추적하면 대체로 몇 개의 어족(language family)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어가 속한 인도-유럽어(Indo-European)는 다른 어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많이 된 편입니다. 하지만, 어디에 사는 사람들이 처음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리투아니아(Lithuania)에서 크림 반도(Crimean peninsula)까지 펼쳐져 있는 내륙 지방에서 살던 석기 시대 사람들이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대략 지금부터 5,500년 전에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원주민은 인도 대륙과 이란과 유럽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인도, 이란, 유럽에 걸쳐서 인도-유럽어 사용자가 살고 있습니다. 영어가 인도-유럽어에 속한 만큼 영어와 인도-유럽어에 속한 다른 언어들은 많은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어의 특징을 영어와 다른 인도-유럽어 사이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다루겠습니다.
영어의 첫 번째 특징은 어미의 굴절변화(inflection)가 거의 없다 는 점입니다. 고전 헬라스어나 라틴어는 물론이고 독일어나 프랑스어에 비해서도 영어는 동사의 활용(conjugation)이나 형용사와 명사의 격변화(declension)가 최소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겠지만, 간단하게 영어라는 언어는 소위 말하는 문법(grammar)이라는 것이 다른 언어에 비해 간단하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먼저 형용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영어의 경우 비교급과 최상급에 각각 -er, -est 를 덧붙이고 원형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예컨대 a good man, a good house, a beautiful flower 등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반면에 프랑스어 bon(good) 은 여성명사 앞에서는 bonne 로, 복수명사 앞에서는 bons 혹은 bonnes 로 바뀝니다. 프랑스어 beau(beautiful, fine, good) 역시 다음에 오는 명사에 따라 beau, bel, belle, beaux, belles 로 바뀝니다.
명사 역시 영어는 the man 을 주격으로 쓰든, 소유격으로 쓰든, 여격으로 쓰든, 목적격으로 쓰든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이렇듯 영어는 격변화가 하나인데 반하여 독일어는 der Mann, des Mannes, dem Manne, den Mann 등으로 격변화를 합니다. 영어는 정관사도 the 하나뿐이지만, 프상스어는 le, la, l’ 와 du, de, la, de, l’, des, an, â, la, à 등 전치사와 결합한 형태로 사용합니다. 독일어는 정관사가 6개의 변화형을 지닙니다.
동사 역시 현재형의 경우, 영어의 come 은 주어가 3인칭 단수일 때만 comes 로 사용하지만, 프랑스어 venir(come) 는 viens, vient, venons, venez, viennent 등 6개의 형태로 활용됩니다. 과거형 역시 영어는 played 하나로만 사용하지만, 독일어는 spielen(to play) 을 인칭과 성과 수에 따라 spielte, spieltest, spielten, spieltet 등으로 달리 사용합니다. 가정법(subjunctive mood) 역시 영어는 if I were, if he were, if it be 등 명목상으로 가정법 동사 형태가 남아 있지만, 프랑스어나 라틴어는 그 형태가 훨씬 더 복잡합니다.
그러나 시제(tense)는 영어가 다른 유럽어에 비해 훨씬 더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영어에는 총 12개의 시제가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의 J’aime 나 라틴어의 amo 는 영어로 I love, I am loving, I do love 의 세가지 중의 하나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는 영어가 좀 더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언어 사이에 우열을 나누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두 번째로 영어는 문법상의 성(grammatical gender)을 사용하지 않는다 는 점에서 다른 유럽어와 뚜렷이 구별됩니다. 문법상의 성은 남성(masculine), 여성(feminine), 중성(neuter)이 있는데, 이는 자연적인 구분이 아니라 문법상의 구별입니다. 프랑스어에서 tableau(table) 는 여성명사이지만, pupitre(desk) 는 남성명사입니다. 독일어에서는 Kind(child) 와 Weib(wife) 가 모두 중성명사입니다. 관례적이라고는 해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반면에 영어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수컷은 he, him 으로, 암컷은 she, her 로, 무생물이나 추상적인 대상은 it 으로 지칭합니다. 물론 ship, country 등을 의인화하여 여성형인 she, her 로 지칭하지만, 이는 문법적이라기 보다는 관습적인 것일 뿐입니다. 고대 영어(Old English, 400~1100)와 중세 영어(Middle English, 1100~1500)는 물론이고 초기 현대 영어(Early Modern English, 1500~1700)를 사용했던 시절까지도 뱃사람이나 정치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남성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결국 영어는 다른 유럽어에 비해 정교한 문법이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 표현이 다소 불분명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없지 않고, 이 또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정교한(다른 말로 하면 “복잡한”) 문법에 기초한 다른 유럽어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다른 유럽어와 영어의 차이점은 철자(spelling)와 발음(pronunciation)의 관계입니다. 독일어나 프랑스어는 철자와 발음간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에, 영어는 철자와 발음이 심하게 차이가 납니다. 물론 한국어 역시 “빗, 빚, 빛”처럼 철자와 발음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need 의 /i:/ 발음을 지닌 철자가 need, me, believe, receive, sea, people, key 등과 같이 7개나 됩니다.
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은 변하는데, 철자는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고정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발음에 따른 철자 개혁을 실시할 수 밖에 없는데, 영국인이나 미국인의 보수성으로 인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철자와 발음이 상관없기 때문에 영어에는 뚜렷한 발음 규칙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물론이고 영국인이나 미국인까지 사전에 실린 발음 기호를 항상 참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어에 들어온 외래어 역시 원래 발음을 살려서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발음과 철자 체계 내에서 엉터리로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피렌체(Firenze)가 플로렌스(Florence)가 되고, 뮌헨(Müchen)이 뮤니크(Munich)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사용하는 고유명사를 영어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는 영국 특유의 섬나라 근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래어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부실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영어의 가장 큰 특징은 어휘(vocabulary)의 풍부함 입니다. 현재 영어 단어 수는 사람마다 추정치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약 80만개라고 추측합니다. 물론 이 80만개의 어휘 모두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이 어휘의 대부분은 학문어(learned word)이거나 다른 언어에서 빌려온 차용어(loanword)인데, 여기에 영어 어휘의 다양성이 기초합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신조어를 만드는 방식이 영어는 매우 독특합니다. 독일어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 말로 새로운 말을 만듭니다. 이와 달리 영어는 다른 언어를 그대로 차용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에 동화되는 방식을 취합니다. 독일어의 경우 fern(far) 과 sprecher(speaker) 를 합해 fernsprecher(far speaker) 라는 말을 만들었지만, 영어는 고전 헬라스어인 tele(far) 와 phone(sound) 로 새로운 합성어 telephone 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알기 어려운 라틴어와 헬라스어를 가지고 새로운 말을 만드는 방식은 매우 현학적이지만, 한국어와 일본어가 한자를 가지고 무수히 많은 신조어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주 불합리한 것은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독일어의 신조어 제작 방식이 훨씬 낫지만, 영어의 신조어 산출 방식도 어휘의 막대함에 기여하는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입니다.
영어의 역사는 브리튼 섬의 역사만큼이나 파란만장합니다. 브리튼 섬의 원주민인 켈트족(Celts)을 4세기까지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 물러난 후 브리튼 섬의 동부와 북부에는 앵글족(Angles)이, 남부와 서부에는 색슨족(Saxons)이, 남동부에는 쥬트족(Jutes)이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 앵글로색슨족의 언어가 고대 영어가 되었고, 9세기 후반 덴마크인과 노르웨이인에 이어 11세기에는 노르만족(Normans)이 브리튼 섬을 정복하면서 중세 영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 섬의 원주민의 언어인 켈트어(Celtic)는 영어에서 배제되고 앵글로색슨어가 영어의 가장 기초적인 어법과 어휘를 제공했습니다. 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 역시 앵글로색슨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동화되었지만, 노르만족은 프랑스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11세기부터 프랑스어가 상류층이 사용하는 영어 어법과 어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6~17세기 브리튼 섬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면서 초기 현대 영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 시절 고전 헬라스어와 라틴어를 대거 차용합니다. 초기 현대 영어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이고, 가장 유명한 저서는 1611년에 출판된 킹 제임스 성경(The King James Version of the Bible)입니다. 그 뒤 1700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후기 현대 영어(Late Modern English)가 바로 요즘 사용하고 있는 영어입니다.
영어 어휘는 브리튼 섬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여 앵글로색슨어인 king 과 프랑스에서 유래한 royal 과 라틴어에서 유래한 reign 과 고전 헬라스어에서 유래한 monarch 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앵글로색슨어는 영어 어휘의 30%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라틴어와 고전 헬라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대체로 영국이나 미국의 초등학생들은 앵글로색슨어에서 기원한 기초적인 영어 어휘를 배우고, 중학생들은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중급 어휘를 배우고, 고등학교 때부터 라틴어와 고전 헬라스어에서 유래한 고급 어휘를 배웁니다. 그리고 라틴어와 고전 헬라스어에서 유래한 고급 어휘를 잘 배운 학생들이 결국 대학에 진학하고, 라틴어와 고전 헬라스어까지 공부한 학생들이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영어 어휘를 어원을 통해서 공부하면,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중에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창안한 개념에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 어원을 활용하여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물론 후배들은 새로운 어휘를 또 공부하는 수고가 늘어나겠지만 말입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듯이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어휘와 표현을 다시 영어로 바꾸거나 비틀면서 창의적인 말하기와 글쓰기가 탄생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라틴어와 고전 헬라스어 어원을 통해 영어 어휘를 공부하라고 권하는 진짜 목적은 단순히 어휘 실력을 향상시켜 GPA와 SAT와 AP 성적을 높게 받으려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영어의 근원을 파악하여 영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바라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앞으로 공부해야 할 영어 어휘는 수없이 많은 차용이 중첩되어 축적된 것입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lingua franca)의 지위를 차지한 것은 무엇보다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영국과 미국의 세계 주도권(world hegemony)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어휘를 빌려와 인류 역사상 유례 없이 풍부한 어휘를 축적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영어의 풍성한 어휘와 표현을 익힌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어의 풍성한 어휘와 표현의 세계로 들어가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영어의 어휘 차용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말씀 드리면서 본격적으로 영어 어휘와 표현을 공부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 김태한, <영어학개론> (서울: 을유문화사, 1982)영어학개론>
- 김석산, <영어발달사> (서울: 을유문화사, 1989)영어발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