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의 이해와 감상 (2) - Edmund Spenser's Sonnet 75
02 Jan 202016세기에 살았던 에드먼드 스펜서는 영문학사에서 희랍과 로마의 고전 시문학은 물론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시문학을 수용하여 영국의 시문학에 정착시킨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됩니다. 스펜서는 운율(metrics)에 큰 관심을 기울여 스펜서식 소네트의 독특한 각운(rhyme)을 창안하고, 이탈리아의 서정시인 칸초네(canzone) 양식을 아름답게 변형하여 수용하고, 9행으로 이루어진 스펜서식 연(Spenserian stanza)을 창안하고, 고대 희랍과 로마 서사시(일리아스, 오딧세이아, 아이네이스)의 운율인 6음보(hexameter)로도 시를 썼습니다.
평생을 잉글랜드의 식민지인 아일랜드에서 식민지 관료로 보낸 스펜서는 아일랜드의 자연과 문화에 깊은 매력을 느꼈지만, 가혹한 식민 통치를 주장했습니다. 영문학에 내재한 가장 큰 논란 중의 하나인 문학과 식민주의의 모순을 가장 이른 형태로 체현한 작가가 바로 스펜서입니다. 젊은 시절 청교도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고 평생 신교도로 남았지만, 신앙과 죄악에 대한 스펜서의 이해는 카톨릭 사상가들에 빚졌습니다. 스펜서는 정중하고 점잖고 도덕적 개선을 옹호한 이상주의자였지만, 동시에 잉글랜드 민족주의와 제국과 군사력의 찬양자였습니다. 한마디로 시를 쓰기 위해 필요한 모순을 한 몸에 구현한 타고난 시인이었습니다.
스펜서식 소네트는 기존의 소네트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도 많이 다릅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소네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을 수 없는 고통을 남성 화자가 노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스펜서식 소네트는 여성 화자가 남성 화자의 구애에 응하고 함께 사랑을 완성합니다. 1594년 홀아비였던 스펜서는 엘리자베스 보일과 결혼했고, 그 다음해인 1595년 “작은 사랑들(Amoretti)”이라는 제목으로 소네트집을 출판했습니다. “amoretti”는 이탈리아어로 사랑의 신 큐피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약간의 논란은 있지만, 스펜서의 소네트는 이 시절의 구애와 결혼을 소재로 삼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소네트 75번을 읽어보겠습니다.
One day I wrote her name upon the strand,
But came the waves and washèd it away:
Agayne I wrote it with a second hand,
But came the tyde, and made my paynes his pray.
“Vayne man,” sayd she, “that doest in vaine assay,
A mortall thing so to immortalize,
For I my selve shall lyke to this decay,
And eek my name bee wypèd out lykewize.”
“Not so,” quod I, “let baser things devize
To dy in dust, but you shall live by fame:
My verse your vertues rare shall eternize,
And in the heavens wryte your glorious name.
Where whenas death shall all the world subdew,
Our love shall live, and later life renew.”
일단 철자법이 엉망이지요? 이 소네트의 철자법이 엉망인 이유는 스펜서가 가장 존경하는 이전 시대 시인이었던 제프리 초서의 철자법을 의도적으로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스펜서는 중기 영어(Middle English)가 근대 영어(Modern English)로 전환되는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철자가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철자법이나 정서법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자기 이름도 매번 다른 철자로 썼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입과 귀로 말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글을 썼던 이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시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펜서식 소네트는 약강 5음보(iambic pentameter)입니다. 5음보는 발음되는 음절이 2개씩 묶여서 5번 반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음되지 않은 모음, 예컨대 “wr’o’te”의 “e”는 음절로 계산되지 않는 모음입니다. 반면에, 이중모음(diphthong)은 한 음절로 취급합니다. 이렇게 시의 운율을 파악하는 것을 “운율 분석, 혹은 운율에 따라 낭독하기(scansion)”이라고 합니다. 영시에 익숙해지면 곧바로 스캔션이 되지만, 처음에는 천천히 시를 읽으면서 (1) 발음되는 모음과 발음되지 않은 모음을 구별하여 음절을 나누고, (2) 약(단)과 강(장)으로 발음되는 음절을 5개의 묶음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w’a’shèd”와 “w’y’pèd”에 나오는 저음 악센트(grave accent)가 붙은 “è”는 발음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w’a’shèd”는 “워쉐드”로 발음하고, “w’y’pèd”는 “와이페드”로 발음합니다. 결국 “t’y’de”의 “e”는 발음이 되지 않는 모음이지만, “è”는 발음이 되는 모음이기 때문에 약(단)음절이 됩니다. 아래에 이 소네트의 스캔션을 소개합니다. 볼드체로 강조하지 않은 발음되는 모음이 약(단)음절이고, 볼드체로 강조한 모음이 강(장)음절입니다.
One day I wrote her name upon the strand,
But came the waves and washèd it away:
Agayne I wrote it with a second hand,
But came the tyde, and made my paynes his pray.
“Vayne man,” sayd she, “that doest in vaine assay,
A mortall thing so to immortalize,
For I my selve shall lyke to this decay,
And eek my name bee wypèd out lykewize.”
“Not so,” quod I, “let baser things devize
To dy in dust, but you shall live by fame:
My verse your vertues rare shall eternize,
And in the heavens wryte your glorious name.
Where whenas death shall all the world subdew,
Our love shall live, and later life renew.”
스펜서식 소네트의 구성은 각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스펜서식 소네트에서 첫 번째 4행 연구(quatrain, 四行聯句)는 도입(introduction)이고, 두 번째 4행 연구는 전개(development)이고, 세 번째 4행 연구는 전환(turn)이고, 마지막 2행 연구(couplet, 二行聯句)는 결론(conclusion)입니다. 한마디로 “기승전결(起承轉結)” 구성입니다.
이러한 기승전결 구조는 “abab + bcbc + cdcd + ee”로 이루어진 각운(rhyme)으로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str)and”와 “(h)and”가 “a”이고, “”(aw)ay”와 “(pr)ay”와 “(ass)ay”와 “(dec)ay”가 “b”이고, “(immortal)ize”와 “(lykew)ize”와 “(dev)ize”와 “(etern)ize”가 “c”이고, “(f)ame”과 “(n)ame”이 “d”이고, “(subd)ew”와 “(ren)ew”가 “e”입니다.
각운이 도입부와 전개부를, 전개부와 전환부를 연결하지만, 결론에서는 새로운 각운을 사용하여 도입부와 전개부와 전환부와는 다른 차원의 도약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소네트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 끝내면 약간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한 행씩 살펴보겠습니다.
“One day I wrote her name upon the strand”에서 바닷가(strand)는 해변(shore)을 의미합니다. “But came the waves and washèd it away”에서 “the waves came”이 아니라 “came the waves”는 운율을 맞추기 위한 도치이지만, 어순이 자유로운 라틴어의 영향 때문입니다. “Agayne I wrote it with a second hand”에서 “Agayne”은 “again”을 의미합니다. “But came the tyde, and made my paynes his pray”에서 “tyde”는 “tide”이고, “paynes”는 “pains”이고, “pray”는 “prey”입니다. 특히 “pray”는 약간 수수께끼 같지요? 여기서 “조수(tyde)”는 “파도(waves)”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해변에 쓴 이름을 파도가 지워서 다시 썼는데 이번에는 조수가 와서 수고를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도입부입니다. 사랑에 빠진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해보는 일일 것입니다.
““Vayne man,” sayd she, “that doest in vaine assay”에서 “vayine”은 “허영심 넘치는(vain)”이라는 의미이고, “sayd”는 “said”입니다. “doest”는 “do”의 고어(단수 2인칭 직설법 현재형)이고, 주어인 “thou(you)”가 없어도 동사가 2인칭이기 때문에 주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in vaine assay”는 “헛된 시도로(in vain attempt)”라는 의미입니다. 전개부가 시작되면서 사랑하는 여성이 나타나고, 파도와 조수에 도전하는 허영심 넘치는 시적 화자에게 헛된 수고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 행에 나옵니다.
“A mortall thing so to immortalize”에서 “mortall”은 “mortal”입니다. 죽을 운명인 인간이 불멸하려고 하니 당연히 헛된 시도입니다. “For I my selve shall lyke to this decay”에서 “selve”는 “self”이고, “lyke”는 “like”입니다. 여성 화자는 자신은 육신의 부식(decay), 즉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And eek my name bee wypèd out lykewize.”에서 “eek“는 “또한(also)”라는 의미이고, “bee”는 “be”이고, “wypèd”는 “wiped”이고, “lykewize”는 “likewise”입니다. 여성 화자가 자신의 이름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be”는 “shall be”로 이해해야 합니다. 남성 화자의 허영심을 충고하는 여성 화자는 더없이 합리적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순박한 아일랜드 사람들의 목소리입니다. 판도라 행성에 사는 나비족의 목소리이고, 인간의 탐욕에 맞서는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Not so,” quod I, “let baser things devize”에서 “말했다(quod)”는 “quoth”로 쓰기도 합니다. “생각하다(devize, devise)”는 유증하다(bequeath by will)는 의미도 있습니다. “비천한 것들(baser things)”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자의 시각이고, 식민주의자의 목소리입니다. 세상에 비천한 일을 하는 사람도 없고, 비천한 사람도 없습니다. “To dy in dust, but you shall live by fame”에서 “dy”는 “die”입니다. “My verse your vertues rare shall eternize”에서 “vertues”는 “virtues”이고, “rare”는 운율 때문에 “vertues” 뒤로 갔습니다. “And in the heavens wryte your glorious name”에서 “wryte”는 “write”입니다. 전환부에서 남성 화자는 비천한 것들은 먼지 속에서 죽게 내버려두지만, 당신은 명예롭게 살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자신의 시가 당신의 훌륭한 미덕을 영원하게 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하늘에 쓸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Where whenas death shall all the world subdew”에서 “whenas”는 “whereas”이고, “subdew”는 “subdue”입니다. “Our love shall live, and later life renew.”에서 “이후의 삶(later life)”은 결혼 후의 삶을 의미하기도 하고, “where”를 “in the heavens”에 연결시키면 하늘에서의 삶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결론에서 남성 화자는 죽음이 온 세상을 굴복시킬 테지만, 우리의 사랑은 살아남을 것이고, 결혼 후의 삶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어떤가요? 스펜서의 사랑 노래에 공감할만한가요? 여러분이 엘리자베스 보일이라면 에드먼드 스펜서의 청혼을 승낙했을까요? 혹은 여러분이 에드먼드 스펜서라면 엘리자베스 보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소네트를 썼을까요? 저 개인적으로 문학적 글쓰기(literary writing)는 연애 편지 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연애 편지의 목적은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논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문학적 글쓰기의 핵심 역시 공명과 공감과 감정이입입니다. 문학적 글쓰기의 본질을 이해하는 학생이라면 문학 텍스트를 읽는 것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 개인적으로 고귀한 사람이 따로 있고 비천한 사람이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과는 연애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안에 고귀함과 비천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럴 때는 고귀하고 저럴 때는 비천합니다. 자기 속의 비천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연애 초기에는 상대방을 고귀하게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비천하게 볼 것입니다. 이후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은 연애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자기가 비천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이후의 삶에서도 상대방의 고귀함과 비천함을 모두 존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