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의 이해와 감상 (3) - John Milton's Sonnet 16
03 Jan 2020찰스 1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와 잉글랜드 의회를 중심으로 한 의회파 사이의 내전은 1642년에 시작되어 1651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잉글랜드 내전은 유럽 최초의 중산 계급(bourgeoisie) 혁명이었습니다. 1648년 찰스 1세를 처형한 후, 의회파 지도자인 올리버 크롬웰은 영국 역사상 유일한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1658년 크롬웰이 사망하자 청교도 혁명은 어이없이 무너졌고, 찰스 2세를 국왕으로 옹립하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졌습니다. 17세기 영국 역사의 격동과 개인적인 불행이라는 이중의 위기를 온 몸으로 겪었던 존 밀턴은 공화국을 열렬하게 지지했고, 흔히 성공회라고 불리는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의 개혁을 요구했고,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을 옹호했고, 출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주창했습니다.
에드먼드 스펜서의 영향을 받은 밀턴은 젊은 시절부터 영국을 대표하는 예언자적 시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전원시에서 출발하여 서사시에 도달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모범으로 삼아 전원시에서 출발하여 서사시를 쓴 스펜서처럼 밀턴 역시 젊은 시절 전원시부터 썼습니다. 하지만, 시민 혁명이 진행되던 1640년부터 1660년 사이 20년간 밀턴은 정치와 종교와 사회에 관한 산문을 쓰는데 전념했습니다. 1652년 첫 번째 아내인 메리 파월이 출산 중에 사망했고, 같은 해 밀턴은 완전히 실명했습니다. 1656년 두 번째 아내인 캐서린 우드콕과 재혼했지만, 1658년 캐서린 우드콕도 사망했습니다. 크롬웰의 사망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공화국을 옹호했던 밀턴은 1660년 왕정복고 이후 정치적 삶에서 물러났습니다. 1663년 결혼한 세 번째 아내인 엘리자베스 민셜의 도움으로 밀턴은 필생의 과업인 서사시를 쓰는데 전념했고, “실낙원”과 “복낙원”과 “투사 삼손”을 완성했습니다.
밀턴은 어렸을 때 라틴어와 고전 희랍어와 히브리어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웠고, 나중에 스페인어와 네덜란드어도 배웠습니다. 특히 주로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영국의 공화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라틴어로 쓴 글은 당대 최고의 라틴어 문장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밀턴은 1630년에서 1658년까지 24편의 소네트를 썼습니다. 밀턴이 이탈리아어로 쓴 5편의 소네트는 이탈리아식 소네트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내용도 페트라르카식의 간절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 노래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쓴 19편의 소네트는 실명과 아내의 죽음 같은 개인적인 위기, 올리버 크롬웰과 의회의 박해 같은 정치적 주제, 친구들과 우정, 왕당파의 런던 공격 위협과 피에몬테 골짜기에서 벌어진 신교도 박해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은 1652년 밀턴이 완전히 실명한 직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소네트 16번입니다.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
“Doth God exact day-labor, light denied?”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영국의 소네트는 거의 전부가 약강 5음보(iambic pentameter)입니다. 먼저 운율 분석(scansion)을 해보기 바랍니다. 아래에 이 소네트의 스캔션을 소개합니다. 볼드체로 강조하지 않은 발음되는 모음이 약(단)음절이고, 볼드체로 강조한 모음이 강(장)음절입니다. 10번째 행의 “Either”에서만 약강이 강약으로 바뀌었습니다.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
“Doth God exact day-labor, light denied?”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이탈리아식 소네트, 혹은 페트라르카식 소네트는 8행 연구(octave, 八行聯句)와 6행 연구(sestet, 六行聯句)로 이루어집니다. 8행 연구에서 질문을 제기하고, 이어지는 6행 연구에서 결론을 내리는 구성입니다.
각운(rhyme)은 “abbaabba + cdecde(cdcdcd)”로 진행됩니다. “abba” 형태의 각운을 교차 배열(chiasmus)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white lilies and roses red”나 “we live to die, but we die to live”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라틴어에서 유래한 교차 배열을 많이 사용합니다. “(sp)ent”와 “(b)ent”와 “(pres)ent”와 “(prev)ent”가 “a”이고, “(w)ide”와 “(h)ide”와 “(ch)ide”와 “(den)ied”가 “b”이고, “(n)eed”와 “(sp)eed”가 “c”이고, “(b)est”와 “(r)est”가 “d”이고, “(st)ate”와 “(w)ait”가 “e”입니다.
그럼 한 행씩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에서 “소모된(spent)”은 “꺼진(extinguished)”이라는 의미입니다.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에서 “ere”는 “전에(before)”라는 의미입니다. “and wide”는 운율 때문에 뒤에 쓴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5번도 “When I consider everything that grows”로 시작합니다. 인생의 절반이 지나기 전에 이 어둡고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빛이 꺼졌는지 생각할 때라고 서두를 여는 것은 실명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1652년 밀턴은 43세였습니다. 밀턴이 생각한 인생의 절반은 성서에 나오는 평균 수명인 70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84세에 사망한 자신의 아버지의 수명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공증인이었던 밀턴의 아버지는 충실한 신교도였고, 교양 있는 중산층이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밀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6년 동안 아버지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개인적으로 신학과 철학과 역사와 과학과 정치학과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역시 아버지의 재정적 후원으로 15개월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스위스로 대륙 순회 여행(grand tour)을 다녀왔습니다. 밀턴은 이러한 아버지의 후원을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밀턴의 생각은 계속 이어집니다.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에서 “달란트(talent)”는 “재능(talent)”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에서 “무용한(useless)”은 “고리대금업(usury)”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달란트-재능(talent-talent)”은 동철이음어(homonym)를 이용하고, “무용한-고리대금업(useless-usury)”은 동음이의어(homophone)를 이용한 말장난(pun)입니다. 그리고 “though my soul more bent”부터 소네트의 전개가 반박자 빨라집니다. 원래는 8행 연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6행 연구에서 결론을 내려야 하지만, 이런 빠른 전개로 이 소네트는 7.5행 연구까지 문제 제기가 끝나고, 6.5행 연구에서 곧바로 결론이 나옵니다.
성서의 마태오 복음서(25장 14절~30절)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는 신교도에게 매우 중요한 텍스트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하인들을 불러 각자의 능력에 따라 5달란트와 2달란트와 1달란트를 주었습니다. 5달란트를 받은 하인은 그 돈을 활용하여 5달란트를 더 벌었고, 2달란트를 받은 하인도 그 돈을 활용하여 2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러한 1달란트를 받은 하인은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하게 되었습니다. 5달란트를 받은 하인이 5달란트를 더 바쳤고, 2달란트를 받은 하인은 2달란트를 더 바쳤습니다. 주인은 2명의 하인을 칭찬하면서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큰 일을 맡기겠다고 말하고,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1달란트를 받은 하인은 주인이 모진 사람이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1달란트를 땅 속에 숨겼다고 말하면서 1달란트를 그대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자신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알고 있었다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맡겨 이자를 붙여 자신에게 돌려주었어야 했다고 말하면서 1달란트를 빼앗아 10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주인은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달란트를 바친 하인을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달란트를 바친 하인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에게 구원을 받을 사람은 이미 정해졌고, 구원의 여부는 지상에서 열심히 일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장 칼뱅의 구원예정설, 혹은 직업소명설은 신교도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밀턴은 (땅 속에) 감추면 죽음이 되는 1달란트, 혹은 작은 재능을 쓸모 없이 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에서 “therewith”는 “with that (one talent)”이고, “창조자(Maker)”는 신(God)입니다. 밀턴의 영혼은 고리대금업을 통해서라도 1달란트, 혹은 작은 재능을 가지고 전력을 다해 신에게 봉사하고자 합니다.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에서 “나의 진정한 셈(my true account)”은 주인(신) 앞에서 해야 할 셈입니다. “When I consider ~ and present my true account”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lest he returning (should) chide”로 이해해야 하고, “주인(신)이 돌아와 꾸짖지 않도록”이라는 의미입니다.
“Doth God exact day-labor, light denied?”에서 “doth”는 “does”의 고어이고, “받아내다(exact)”는 “요구하다(demand)”의 의미입니다.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에서 “허황되게(fondly)”는 “어리석게(foolishly)”라는 의미입니다. 여기까지가 문제 제기입니다. 인생이 절반도 지나기 전에 어둡고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빛이 꺼졌는지 생각할 때, 그리고 감추면 죽음이 되는 1달란트를 쓸모 없이 맡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영혼은 1달란트를 가지고 전력을 다해 신에게 봉사하고자 하지만, 주인이 돌아와 꾸짖지 않도록 어리석게도 “신은 빛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도 낮의 일을 요구합니까?”라고 묻습니다.
밀턴이 말하는 “낮의 일(day-labor)”는 성서의 요한 복음서(9장 4절)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눈먼 사람을 치료하기 전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나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밤이 오면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I must work the works of him that sent me, while it is day: the night cometh, when no man can work)”라고 말합니다. 마태오 복음서(25장 1절~13절)까지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 역시 등불에 관한 것입니다.
나(I)의 질문에 대해 의인화된 인내(Patience)가 대답합니다. “but Patience to prevent”에서 “막다(prevent)”는 “미연에 방지하다(forestall)”는 의미입니다.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에서 “replies”의 주어는 “Patience”입니다. 인내가 투덜거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곧바로 대답합니다.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에서 “his own gifts”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신적인 재능”입니다. 밀턴에게 인간의 재능은 결국 신의 선물(gift)입니다.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에서 “his mild yoke”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편한 멍에”이고, “who best bear his mild yoke”에서 “who”의 선행사는 “they”입니다. 신은 인간의 업적도 인간의 신적인 재능도 필요로 하지 않고, 신이 부여한 편한 멍에를 가장 잘 견디는 사람이 신에게 가장 잘 봉사합니다. 밀턴의 편한 멍에는 아내의 죽음과 실명이었고, 독실한 신앙이었고, 영국을 대표하는 예언자적 시인이라는 사명감이었습니다.
성서의 마태오 복음서(11장 28절~30절)에 멍에의 비유가 나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Come unto me, all ye that labour and are heavy laden, and I will give you rest.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of me; for I am meek and lowly in heart; and ye shall find rest unto your souls.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신의 나라(His state)”는 “신의 영광(splendor)”을 의미하고,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에서 “수천(Thousands)”은 “천사(angels)”를 의미하고, “신의 명령으로(at his bidding)”으로는 “신의 뜻대로”라는 의미입니다.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에서 “o’er”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over”에서 “v”를 뺀 것입니다.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에서 “who”의 선행사는 “they”입니다. 신의 영광은 장엄합니다. 수천의 천사가 쉼 없이 땅과 바다에서 빠르게 신의 뜻을 알립니다. 오로지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신에게) 봉사합니다. “서서 기다린다(stand and wait)”가 당시 밀턴의 마음가짐입니다. 서서 기다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서있다는 것은 주저앉거나 넘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준비를 한다는 뜻입니다. 영춘권을 대중에게 보급한 엽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대종사(一代宗師, 한 시대의 큰 스승)”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엽문은 “쿵후는 두 글자로 가로와 세로(功夫, 兩個字: 一橫一豎)”라고 말합니다. 가로는 쓰러진 것이고, 세로는 서있는 것입니다. 쿵후의 핵심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서있는 것입니다. 밀턴은 실명했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꿋꿋이 서서 멍에를 메겠다고 다짐합니다.
때가 아닐 때 나서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어서 나서려면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끊임없이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밀턴이 지지했던 시민 혁명과 공화국이라는 정치적 대의와 영국 국교회의 개혁이라는 종교적 대의는 실패로 돌아갔고, 1665년 런던 대역병과 1666년 런던 대화재가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밀턴은 대필자들과 친구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구술을 받아쓰게 하여 전쟁 영웅이 아니라 가정을 이룬 부부인 아담과 이브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시를 완성했습니다.
타락 이전의 에덴 동산과 악마의 정치적 수사가 지닌 힘이 극명하게 대조되고, 악마와 아담과 이브의 심리가 섬세하게 드러나고, 몰락과 그 여파가 긴박하게 전개되는 “실낙원(Paradise Lost)”은 밀턴이 살았던 시대의 위기에 대한 진단이자 오로지 서서 기다리는 자가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입니다. 세계는 서로 다른 모든 해석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롭고, 그 세계를 주관적으로 포착한 서정시 역시 무한히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서서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인생을 살면서 어느 순간 “아, 이제 나는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때가 되면, 밀턴의 소네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이 소네트에서 더할 나위 없는 위로와 공감과 영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소네트의 해석은 “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 Vol 1 (9th ed.)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2)”와 “John Milton: The Major Works edited by Stephen Orgel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3)”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