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의 이해와 감상 (4) - Philip Sidney's Sonnet 1
04 Jan 20201455년부터 1487년까지 32년간 지속된 장미 전쟁(Wars of the Roses)은 잉글랜드의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붉은 장미를 문장으로 삼은 랭커스터 가문이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삼은 요크 가문을 상대로 벌인 전쟁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쪽을 죽이지 않고 몸값을 받아내거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인질로 삼은 중세의 전쟁과 달리 장미 전쟁은 왕위를 놓고 벌인 전쟁이었기 때문에 잠재적인 경쟁자를 모두 죽인 이례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장미 전쟁은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튜더 가문의 헨리 튜더가 헨리 7세로 즉위하면서 끝났습니다.
장미 전쟁이 끝났을 때 전쟁 전의 귀족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30% 정도에 불과했고, 자연스럽게 잉글랜드 국왕의 권력 강화로 이어졌습니다.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로 이어진 튜더 왕조는 절대왕정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장남만이 귀족 작위를 승계할 수 있었던 영국에서는 장미 전쟁 이전에도 유럽 대륙에 비해 귀족의 숫자가 적었습니다. 많지도 않았던 귀족이 대부분 죽자 젠트리나 요먼이라고 불리는 지방의 지주 세력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젠트리(gentry)는 혈통은 귀족이었지만 귀족 작위는 없는 지방 지주였고, 요먼(yeoman)은 지주로 자수성가한 자작농이었습니다.
젠트리와 요먼은 상공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여 자본주의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헨리 8세의 이혼으로 영국에서는 종교적으로 가톨릭 신자와 영국 국교회 신자와 청교도가 대립하는 혼란이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물리쳐 장차 전세계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잡을 토대를 마련했고,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엘리자베스 1세는 지금도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국왕으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명망 높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필립 시드니는 귀족적인 자부심과 책임감을 평생토록 유지했습니다. 시드니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위를 받지 않고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시드니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1572년 8월 24일 파리에서 시작된 성 바르톨레메오 축일의 학살이었습니다. 그 해 10월까지 프랑스 전역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프랑스의 신교도인 위그노를 학살한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시드니는 유럽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시드니는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에서 조신으로 일하면서 유럽 전체의 신교 동맹을 맺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종교적 이상보다는 국가의 이익이라는 냉철한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외교 정책을 펼쳤고, 몇 가지 외교적 사명을 시드니에게 맡기기는 했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1580년 엘리자베스 1세와 가톨릭 교도인 프랑스의 프랑수와 왕자와의 결혼에 반대한 후 궁정에서 쫓겨난 시드니는 여동생의 집에 살면서 “아르카디아”를 집필했습니다.
1585년 시드니는 네덜란드에 있는 블리싱건 항구의 수비대장으로 임명되었고, 1586년 9월 13일 네덜란드의 쥐트펀에서 스페인군과 싸우다가 넓적다리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26일 후 괴사로 사망한 시드니는 조국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지만, “아르카디아”라는 산문 로맨스와 “시를 위한 변론”이라는 문학 평론과 “아스트로필과 스텔라”라는 소네트집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엘리자베스 시대의 작가로 남았습니다.
아래는 “아스트로필과 스텔라(Astrophil and Stella)”의 첫 번째 소네트입니다. “아스트로필”은 “별(astro)”과 “사랑하는 사람(phil)”을 합친 말로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스텔라”는 “별(stella)”이라는 뜻입니다. 스텔라는 사랑하는 여인이기도 하지만, 시드니가 꿈꾸었던 이상이자 야심이기도 합니다. “아스트로필”의 “필”은 “필립” 시드니 자신입니다.
Loving in truth, and fain in verse my love to show,
That the dear She might take some pleasure of my pain,
Pleasure might cause her read, reading might make her know
Knowledge might pity win, and pity grace obtain,
I sought fit words to paint the blackest face of woe,
Studying inventions fine, her wits to entertain,
Oft turning others’ leaves, to see if thence would flow
Some fresh and fruitful showers upon my sunburned brain.
But words came halting forth, wanting Invention’s stay;
Invention, Nature’s child, fled step-dame Study’s blows,
And others’ feet still seemed but strangers in my way.
Thus great with child to speak, and helpless in my throes,
Biting my truant pen, beating myself for spite,
“Fool,” said my Muse to me, “look in thy heart and write.”
영국의 소네트는 거의 전부가 약강 5음보(iambic pentameter)이지만, 이 소네트는 약강 6음보(iambic hexameter)입니다. 6음보는 고대 희랍과 로마 서사시(일리아스, 오딧세이아, 아이네이스)의 운율입니다. 약강 6음보는 한 행에 약강이 6번 반복(약강/약강/약강/약강/약강/약강)됩니다. 먼저 운율 분석(scansion)을 해보기 바랍니다. 아래에 이 소네트의 스캔션을 소개합니다. 볼드체로 강조하지 않은 발음되는 모음이 약(단)음절이고, 볼드체로 강조한 모음이 강(장)음절입니다. “Loving”, “That the”, “Pleasure”, “reading”, “Knowledge”, “Studying”, “wanting”, “Biting”, “beating” 등 군데군데 약강이 강약으로 바뀐 곳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약강 6음보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Loving in truth, and fain in verse my love to show,
That the dear She might take some pleasure of my pain,
Pleasure might cause her read, reading might make her know
Knowledge might pity win, and pity grace obtain,
I sought fit words to paint the blackest face of woe,
Studying inventions fine, her wits to entertain,
Oft turning others’ leaves, to see if thence would flow
Some fresh and fruitful showers upon my sunburned brain.
But words came halting forth, wanting Invention’s stay;
Invention, Nature’s child, fled step-dame Study’s blows,
And others’ feet still seemed but strangers in my way.
Thus great with child to speak, and helpless in my throes,
Biting my truant pen, beating myself for spite,
“Fool,” said my Muse to me, “look in thy heart and write.”
이 소네트는 이탈리아식 소네트의 8행 연구(octave, 八行聯句)를 2개의 4행 연구(quatrain, 四行聯句)로 나누고, 이어지는 6행 연구(sestet, 六行聯句)를 다시 4행 연구와 2행 연구(couplet, 二行聯句)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4행 연구는 도입(introduction)이고, 두 번째 4행 연구는 전개(development)이고, 세 번째 4행 연구는 전환(turn)이고, 마지막 2행 연구는 결론(conclusion)입니다. 한마디로 “기승전결(起承轉結)”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각운(rhyme)은 “abab + abab + cdcd + ee”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4행 연구와 두 번째 4행 연구의 각운을 맞추어서 일체감을 주고, 세 번째 4행 연구는 다른 각운을 사용하여 새로운 전개를 알립니다. 마지막 2행 연구에서는 새로운 각운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sh)ow”와 “(kn)ow”와 “(w)oe”와 “(fl)ow”가 “a”이고, “(p)ain”과 “(obt)ain”과 “(entert)ain”과 “(br)ain”이 “b”이고, “(st)ay”와 “(w)ay”가 “c”이고, “(bl)ows”와 “(thr)oes”가 “d”이고, “(sp)ite”와 “(wr)ite”가 “e”입니다.
그럼 한 행씩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Loving in truth, and fain in verse my love to show”에서 “바라는(fain)”은 “원하는(desirous)”의 의미입니다. “운문으로 내 사랑을 보여주기를 바라면서(and fain to show my love in verse)”가 원래 어순이지만, 어순이 자유로운 라틴어의 영향 때문에 어순이 바뀌었습니다. 수고본과 4절판(quarto)에는 “That the dear She might take some pleasure of my pain”로 인쇄되어 있지만, 1598년 출판된 2절판(folio)에는 “That she (dear she) might make some pleasure of my pain”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운율은 2절판의 시행이 더 잘 맞습니다. “that”은 “so that”의 의미입니다. 시인은 진실로 사랑하면서, 운문으로 사랑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고통스러운 창작을 통해서 사랑하는 그녀가 약간의 기쁨을 누릴 테니까요.
“Pleasure might cause her read, reading might make her know”와 “Knowledge might pity win, and pity grace obtain”는 고통스럽게 운문을 쓰는 이유이자 문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창작은 고통스럽지만, 창작된 작품을 읽는 것은 즐겁고 기쁩니다. 기쁨 때문에 읽고, 읽으면 알게 되고, 앎은 연민을 얻고, 연민은 미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주의(idealism)와 교훈주의(didacticism)가 결합된 시드니의 문학관은 “시를 위한 변론(The Defense of Poesy)”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시를 위한 변론”에서 시드니는 명예 훼손 재판에서 의뢰인을 변호하는 고대 로마의 법률가처럼 문학의 존엄과 사회적 효능과 도덕적 가치를 옹호합니다. 문학이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청교도의 고발에 대해 시드니는 세상에서 해방된 시인은 자신의 분별력이라는 황도대 내에서 항해할 수 있고, 시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꾼다고 주장합니다. 시인을 라틴어로 예언자(vates)라고 부르고, 고전 희랍어로 제작자(poietes)라는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천문학부터 음악과 의학까지 모든 학문은 궁극적인 대상으로 자연에 의존하지만, 시만은 자연에서 자유롭습니다. 오로지 시인만이 자연에 종속되어 묶여 있는 것을 거부하고, 창작의 활력으로 고양되어 사실상 또 다른 자연이 됩니다. 이러한 자유 덕분에 시인은 자연보다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미덕과 악을 제시할 수 있고, 동시에 독자를 가르치고 기쁘게 하고 감동시킵니다. 시는 철학보다 구체적이고, 역사보다 보편적입니다. 플라톤은 시인은 거짓을 말하기 때문에 좋은 나라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드니는 시인은 아무 것도 단언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창작과 문학 이론과 다릅니다. 두 번째 4행 연구에서는 창작을 향한 길을 묘사합니다. “I sought fit words to paint the blackest face of woe”에서 “비애(woe)”는 그녀의 연민(pity), 혹은 독자의 공감을 얻기 위한 시적 이미지입니다. 시인은 비애의 가장 어두운 모습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시적 표현을 찾습니다.
“Studying inventions fine, her wits to entertain”은 “Studying fine inventions, to entertain her wits”가 맞는 어순이지만, 운율과 라틴어의 영향으로 어순이 바뀌었습니다. “Oft turning others’ leaves, to see if thence would flow”에서 “oft”은 “often”의 고어이고, “leaves”는 “책장(leaf)”의 복수형이고, “거기에서(thence)”는 “from there”의 고어입니다. “Some fresh and fruitful showers upon my sunburned brain”에서 “햇볕에 탄 뇌(sunburned brain)”는 창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의미입니다.
독자에게 지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훌륭한 창작품을 연구하고, 창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뜨거워진 머리에 신선하고 좋은 결실을 가져오는 소나기가 쏟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종종 다른 사람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무난한 편입니다. 창작에 수반되는 진짜 고통은 다음 4행 연구에 나옵니다.
“But words came halting forth, wanting Invention’s stay”에서 “불완전한(halting)”은 “절뚝거리는(limping)”을 의미하고, “부족한(wanting)”은 “없는(lacking)”을 의미하고, “지주(stay)”는 돛대를 고정하는 굵은 밧줄(rope)을 의미합니다. “창작력(Invention)”은 창작 능력을 의인화(personification)한 것입니다.
“Invention, Nature’s child, fled step-dame Study’s blows”에서 “계모(step-dame)”는 “stepmother”의 고어이고, “구타(blow)는 “매질(lashing)”을 의미합니다. 창작력이 자연의 자식이라는 것은 창작은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자연을 모방하지 않고 기존의 예술 작품을 모방하여 창작하는 것을 “연구(Study)”라고 의인화하여 창작력의 계모라고 표현했습니다. 창작력은 독창적인 작품을 산출하는 능력이지만, 연구는 모방작을 산출하는 능력입니다.
“And others’ feet still seemed but strangers in my way”에서 “음보(feet)”는 “운율(metrics)”을 의미하고, “여전히(still)”는 “끊임없이(continually)”를 의미합니다. “Thus great with child to speak, and helpless in my throes”에서 “아이(child)”는 시를 쓰기 위한 “창의적인 발상(creative idea)”을 의미하고, “진통(throes)”은 “아이를 낳는 고통(pains of childbirth)”, 즉 창의적의 발상을 구체화하여 시를 쓰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창작력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시의 형식과 운율을 제대로 맞출 수 없습니다. 자연의 자식이라 자연을 모방하는 “창작력”은 다른 작품을 모방하는 “연구”라는 계모의 매질을 피해 달아납니다. 그리고 다른 시인의 운문은 계속해서 자신의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훌륭한 창의적인 발상이 맴돌지만, 창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산통만 겪고 있습니다.
“Biting my truant pen, beating myself for spite”에서 “무단결석하는(truant)”은 “게으른(idle)”이란 의미이고, “for spite”는 “속이 상해서”라는 의미입니다. 작품을 쓰지 못하는 펜만 물어뜯고, 속이 상해서 자책을 합니다. ““Fool,” said my Muse to me, “look in thy heart and write.””에서 “thy”는 “your”의 고어입니다. “뮤즈(Muse)”는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이자 스텔라이기도 합니다. 무사이 여신은 “어리석은 이여, 마음을 들여다보고 쓰세요”라고 말합니다.
이 소네트의 거의 모든 발상과 표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페트라르카 이후 이탈리아와 프랑스와 스페인의 소네트에서 너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스트로필의 목소리를 빌린 시드니가 108편의 소네트와 11편의 노래가 독창적이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항의하는 것 자체도 이미 확립된 소네트의 전통입니다. 시드니가 “시를 위한 변명”에서 좋은 사랑 시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한 활력(energia)이 분명히 드러났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시드니는 아버지의 개인 비서에게 자신과 아버지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허락 없이 보면 단검으로 찌르겠다고 협박하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평생 내밀한 사생활을 소중히 여겼고, 당시 귀족 사회의 관례에 따라 생전에 작품을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수고로 쓰여진 시드니의 작품을 읽은 독자는 문학적 능력이 뛰어났던 여동생을 비롯한 친척과 주변 친구들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시드니의 독자는 시드니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고,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지 쉽게 눈치챘을 것입니다.
신교도 동맹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스페인 군대와 싸우다가 32세의 젊은 나이에 시드니가 죽자 잉글랜드 전체가 애통해했습니다. 넓적다리에 심한 총상을 입었지만, 옆에서 죽어가는 병사에게 물을 양보하면서 “아직은 나보다는 그대에게 더 필요하지(Thy necessity is yet greater than mine)”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곧바로 퍼졌습니다. 출처를 확인할 수 없는 일화이기는 하지만, 당대 사람들이 시드니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입니다. 시드니가 후대의 작가들, 특히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에서 만난 에드먼드 스펜서에게 미친 영향력은 문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소네트의 해석은 “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 Vol 1 (9th ed.)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2)”와 “Sir Philip Sidney: The Major Works edited by Katherine Duncan-Jone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