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EW Tutor Chung’s English World

TCEW(Tutor Chung's English World)에서 출간한 교재를 소개합니다. Tutor Chung's Vocabulary를 공부하면서 막힘 없는 수능 영어 독해Tutor Chung's Reading Practice 1/2/3/4 순서로 공부하면 가장 좋습니다.

영시의 이해와 감상 (5) - John Donne's Holy Sonnet 10

16세기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English Reformation)은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의 단절이라는 측면에서는 유럽 대륙의 종교 개혁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유럽 대륙의 종교 개혁이 마르틴 루터의 “오직 성서로만,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만(sola scriptura solaque fide)”이라는 신학 이론에 기반을 두었다면,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은 왕위 계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 8세는 왕위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하자 교황청에 혼인 무효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왕비인 캐서린의 조카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클레멘스 7세 교황은 헨리 8세의 요청을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헨리 8세는 1534년 잉글랜드 국왕이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임을 선언하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발표하고,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를 출범시켰습니다. 로마 가톨릭과 결별한 후 헨리 8세는 잉글랜드 내의 가톨릭 교회 재산을 몰수하여 추종자들에게 매각했고, 매각 대금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사용하여 해군 군함을 건조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국교회의 교리는 여전히 신교보다 가톨릭에 가까웠습니다. 영국 국교회는 사제가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이라고 말하면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성변화(聖變化) 혹은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 같은 가톨릭 교리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헨리 8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를 총애하여 재상(Lord High Chancellor)에 임명했지만, 토머스 모어가 잉글랜드를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단절시키는 것에 반대하자 처형했습니다. 헨리 8세가 죽은 후 6년간 재위한 에드워드 6세(헨리 8세의 세 번째 아내인 제인 세이모어의 아들)는 영국 국교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했지만, 에드워드 6세가 죽은 후 5년간 재위한 메리 1세(헨리 8세의 첫 번째 아내인 캐서린의 딸)는 선대 국왕의 종교 관련 법률을 무효화하고 가톨릭 교회로 복귀했습니다. 메리 1세가 죽은 후 1558년부터 1603년까지 재위한 엘리자베스 1세(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인 앤 불린의 딸)는 잉글랜드에서 종교 전쟁이 발생하거나, 유럽의 종교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를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신교 국가로 만들고, 많은 가톨릭 신자를 영국 국교회로 개종시키는 정책을 조심스럽지만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에 충성하는 가톨릭교도에게 무자비했지만, 급진적인 종교 개혁을 옹호하는 신교도에게도 적대적이었습니다. 헨리 8세에 이어 교황에게 파문을 당한 엘리자베스 1세는 가톨릭교도에게 정치적 경제적 불이익을 주었고, 동시에 국왕이 수용하는 종교 개혁보다 앞서나가려는 신교도를 견제했습니다. 자식이 없이 죽은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치하에서도 영국 국교회는 가톨릭과 신교의 중간에 머물렀습니다. 철저한 신교 정책을 요구했던 청교도는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가졌고, 잉글랜드 국왕에 충성했지만 가톨릭 신앙을 버릴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삶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존 던은 1572년 런던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토머스 모어의 먼 친척이었던 존 던의 집안은 가톨릭 순교자를 여럿 배출했습니다. 예수회 사제였던 외삼촌은 교수형과 거세형과 내장을 꺼내고 사지를 찢는 형벌에 처해졌습니다. 동생인 헨리 던은 가톨릭 사제를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수감 중 역병으로 죽었습니다. 존 던은 항상 순교에 대해 생각했고, 죽을 때까지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존 던은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은 잉글랜드 국왕임을 인정하는 충성 맹세(Oath of Supremacy)를 거부했기 때문에 학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법률가를 교육하고 임명하는 법률가 동업 조합인 법학원(Inns of Court)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존 던이 잉글랜드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편견과 공식적인 괴롭힘과 엄청난 벌금뿐이었습니다. 존 던은 이런 처지로 살지 않겠다고 선택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를 익혔고, 신학적 문제를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1590년대 어느 시점에 존 던은 영국 국교회로 개종했습니다.

영국 국교회로 개종한 이후 1596~97년 카디스와 아소르스 제도에서 스페인 군대와 싸운 원정대에 참여했고, 귀국한 뒤에는 국새상서인 토머스 에저턴의 비서가 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601년 토머스 에저턴의 조카딸인 당시 17세의 앤 모어와 비밀리에 결혼을 올렸고, 앤 모어의 부친과 토머스 에저턴은 존 던을 감옥에 가둘 정도로 격분했습니다. 공직에서 쫓겨난 존 던은 앤 모어와 함께 시골로 은퇴했고, 경제적 곤경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앤 모어는 1617년 33세로 사망할 때까지 12명의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존 던은 아이가 죽으면 먹여야 할 입은 줄지만, 매장할 돈이 없다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존 던은 제임스 1세의 후원을 얻기 위해 영국 국교회를 옹호하고 가톨릭 교회를 비난하는 글을 썼고, 친구들과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시를 썼습니다. 16세기와 17세기 잉글랜드에서 시를 쓰는 것은 문학 창작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행위에 가까웠습니다. 상비군도 전국적인 경찰 조직도 광범위한 관료 조직도 효율적인 의사소통도 갖추지 못했던 잉글랜드의 국왕은 궁정(court)으로 귀족과 젠트리를 끌어들여서 권력을 강화했습니다. 잉글랜드와 결혼했다고 공언한 엘리자베스 1세는 궁정의 조신들과 백성들을 사랑한다고 거듭 말했기 때문에, 조신들과 백성들도 여왕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궁정 문화의 핵심은 이중 혹은 삼중의 의미를 지닌 시적인 언어였고, 서정시는 국왕과 귀족과 권력자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궁정인(courtier)의 의사소통 수단이었습니다. 필립 시드니와 에드먼드 스펜서와 존 던 같은 당대의 시인들이 모두 궁정인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존 던이 다른 경력을 추구하는 것을 반대했던 제임스 1세는 영국 국교회의 사제직을 제안했습니다. 1615년 존 던은 마침내 다른 야망을 포기했고, 사제직이 가치가 없다는 생각도 떨쳐버렸습니다. 존 던은 비유적인 표현과 엄청난 박식함과 인상적인 기지를 바탕으로 궁정 설교자이자 링컨즈 법학원의 신학 교수이자 성 바울 대성당의 주임 사제로 활약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종교와 20대의 모험적인 삶에서는 멀어졌지만, 존 던의 설교와 후기 시에서도 젊은 시절의 기발한 발상(conceit, 奇想)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자신을 시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존 던은 생전에 작품을 모아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존 던의 시와 산문은 모두 수고본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후원자들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존 던이 죽고 나서 2년이 지난 1633년에 “노래와 소네트(Songs and Sonnets)”와 “신성한 소네트(Holy Sonnets)”가 출판되었고, 이 두 시집으로 존 던은 영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의 한 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존 던은 주로 사랑과 종교를 주제로 시를 썼지만, “노래와 소네트”에 수록된 시에는 오비디우스적인 애욕적인 사랑부터 페트라르카적인 절망적인 사랑과 신플라톤주의적인 초월적인 사랑까지 다양한 관점과 입장이 나타나기 때문에, 한 명의 시인이 썼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페트라르카의 시에서 지겨울 정도로 반복했던 사랑하는 여인의 외모와 신체적인 특징은 존 던의 시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습니다. 존 던의 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세계가 외부의 공적인 세계보다 우월하거나, 공적인 세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합니다.

존 던이 일생의 어느 시기에 어떤 시를 썼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존 던의 시와 삶의 경험을 곧바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존 던은 평생에 걸쳐 애욕과 절망과 초월이 뒤섞인 시를 썼고, 이 점은 앤 모어가 죽은 후에 평생을 홀로 살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가톨릭과 영국 국교회 사이에서 갈등했던 존 던은 종교의 외면적인 형식이 아닌 내면적인 진리를 추구했고, 그 과정에서 가톨릭 예수회와 신교의 명상 방법(meditative procedure)에 주목했습니다. 명상으로 통해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존 던의 입장은 “신성한 소네트”에 수록된 시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럼 존 던의 신성한 소네트 10번을 읽어보겠습니다.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è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t not so;

For those whom thou think’st thou dost overthrow

Die not, poor Death, nor yet canst thou kill me.

From rest and sleep, which but thy pictures be,

Much pleasure; then from thee much more must flow,

And soonest our best men with thee do go,

Rest of their bones, and soul’s delivery.

Thou art slave to fate, chance, kings, and desperate men,

And dost with poison, war, and sickness dwell,

And poppy or charms can make us sleep as well

And better than thy stroke; why swell’st thou then?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어떤가요? 우선 쉬운 단어와 표현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띄지 않나요? 존 던은 일상적인 구어체를 사용하여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 기발한 비유를 사용하여 예상되는 전개를 뒤엎는 시적인 묘미가 있습니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는 발상을 비유를 통해 연결하는 존 던을 후대의 존 드라이든과 새뮤얼 존슨은 “조화로운 부조화(discordia concors)”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적인 시인(metaphysical poet)”이라고 불렀습니다.

영국의 소네트는 거의 전부가 약강 5음보(iambic pentameter)입니다. 먼저 운율 분석(scansion)을 해보기 바랍니다. “callèd”의 저음 악센트(grave accent)가 붙은 “è”는 발음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callèd”는 “콜레드”로 발음합니다. “Death”, “Mighty”, “Rest”, “Death,” 등 군데군데 약강이 강약으로 바뀐 곳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약강 5음보가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래에 이 소네트의 스캔션을 소개합니다. 볼드체로 강조하지 않은 발음되는 모음이 약(단)음절이고, 볼드체로 강조한 모음이 강(장)음절입니다.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èd thee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t not so;

For those whom thou think’st thou dost overthrow

Die not, poor Death, nor yet canst thou kill me.

From rest and sleep, which but thy pictures be,

Much pleasure; then from thee much more must flow,

And soonest our best men with thee do go,

Rest of their bones, and soul’s delivery.

Thou art slave to fate, chance, kings, and desperate men,

And dost with poison, war, and sickness dwell,

And poppy or charms can make us sleep as well

And better than thy stroke; why swell’st thou then?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

이탈리아식 소네트, 혹은 페트라르카식 소네트는 8행 연구(octave, 八行聯句)와 6행 연구(sestet, 六行聯句)로 이루어집니다. 8행 연구에서 질문을 제기하고, 이어지는 6행 연구에서 결론을 내리는 구성입니다.

각운(rhyme)은 “abbaabba + cddcee”로 진행됩니다. 보통 “cdecde(cdcdcd)”로 진행되는 6행 연구의 각운을 살짝 바꾸었습니다. “abba” 형태의 각운을 교차 배열(chiasmus)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white lilies and roses red”나 “we live to die, but we die to live”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도 라틴어에서 유래한 교차 배열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존 던의 시대에는 “eternally”를 “이터널라이”로 발음했습니다. “(th)ee”와 “(m)e”와 “(b)e”와 “(deliver)y”가 “a”이고, “(s)o”와 “(overthr)ow”와 “(fl)ow”와 “(g)o”가 “b”이고, “(m)en”과 “(th)en”이 “c”이고, “(d)well”과 “well”이 “d”이고, “(eternall)y”와 “(d)ie”가 “e”입니다.

그럼 한 행씩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èd thee”에서 “thee”는 2인칭 단수 인칭 대명사인 “thou”(“you”의 고어)의 목적격입니다. “Mighty and dreadful, for thou art not so;”에서 “art”는 “be”은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현대식 표기로 바꾸면, “Death, be not proud, though some have called you mighty and dreadful, for you are not so”가 됩니다. 먼저 시인은 죽음에게 오만하게 굴지 말라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대 죽음을 대단하고 무시무시하다고 부르지만, 그대 죽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For those whom thou think’st thou dost overthrow”에서 “think’st”는 “thinkest”에서 “e”를 뺀 것이고, “think”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do(e)st”는 “do”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이고, “overthrow”를 강조한 것입니다. “Die not, poor Death, nor yet canst thou kill me.”에서 “canst”는 “can”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시인은 가엾은 죽음에게 그대 죽음이 멀리 던진 사람들은 죽지 않고, 또 그대 죽음은 자신을 죽일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태어난 모든 생명이 언젠가 맞이해야 하는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지만,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피합니다. 영원한 명성을 위해서 이승에서 단명한 삶을 선택한 아킬레우스도 저승에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죽어서 왕이 되느니 노예로 살아도 이승이 낫다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존 던은 이러한 관념을 뒤집습니다. 죽은 사람이 죽지 않고, 자신도 죽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가장 간단한 해석은 육체와 영혼을 양분하여 육체는 죽지만 영혼은 불멸한다는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입니다. 유럽 문명에서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개념은 기독교가 전래되기 이전인 고대 희랍에서부터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의 해석 가능성을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구원이라는 기독교 교리로 제한하면, 오히려 존 던이 명상을 통해서 도달한 기독교의 진리에 독자가 다가서는 것을 방해합니다. 존 던이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죽음이 생각만큼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From rest and sleep, which but thy pictures be,”에서 “단지(but)”는 “오직(only)”를 의미하고, “thy”는 “thou”의 소유격입니다. “Much pleasure; then from thee much more must flow,”에서 “much more”는 “much more (pleasure)”입니다. “And soonest our best men with thee do go,”에서 “가장 빨리(soonest)”는 부사입니다. “Rest of their bones, and soul’s delivery.”에서 “뼈(bones)”는 죽은 뒤에 묻히면 살은 썩고 뼈만 남는 것을 의미하고, “영혼의 배달(soul’s delivery)”는 “영혼의 구원(soul’s salvation)”을 의미합니다. “배달(delivery)”은 보통 “출산(childbirth)”를 의미하지만, 존 던은 출산의 반대인 죽음의 순간 찾아오는 구원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시인은 그대 죽음의 그림에 불과한 휴식과 잠에서 많은 기쁨이 흘러나온다면, 그대 죽음에서는 더 많은 기쁨이 흘러나올 것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휴식과 잠을 죽음의 그림, 혹은 그림자(shadows)로 비유하는 것은 고대 희랍 문학에서 유래한 오랜 전통입니다. 하지만, 존 던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림이나 그림자에 지나지 않은 휴식과 잠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림의 실제 모델이나 그림자의 원형인 죽음에서 더 많은 기쁨을 얻을 수 밖에 없다는 통찰력을 발휘합니다.

이어서 시인은 우리 중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이 가장 빨리 그대 죽음과 함께 가지만, 육체의 휴식이고 영혼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불공평하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운명의 장난 혹은 신의 섭리는 가장 좋은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것입니다. 존 던 역시 자식들과 아내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여 무너졌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일부이고, 본토의 일부입니다. 바다가 흙덩이를 쓸어가면, 곶이 그렇듯이, 그대의 친구나 그대 자신의 땅이 그렇듯이, 유럽은 줄어듭니다. 인류에 속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람의 죽음으로 줄어듭니다. 그러니 누구를 위해 조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러 사람을 보내지 마세요. 조종은 그대를 위해 울립니다.” 존 던 자신은 줄어들었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휴식을 누리고 영혼은 구원을 얻었으리라 믿었습니다.

1623년 겨울 존 던은 심하게 아팠고, 그 당시의 내면적인 성찰을 “뜻밖의 상황에 대한 기도(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라는 산문집에 담았습니다. 이 산문집은 2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은 “우리 인간 조건에 관한 명상(meditation upon our human condition)”과 “충고와 신과의 토론(expostulation and debatement with God)”과 “신에게 바치는 기도(prayer to God)”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17번째 명상”에 위에 인용한 유명한 문구(“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가 나옵니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의 제목을 여기서 따왔습니다.

“Thou art slave to fate, chance, kings, and desperate men,”에서 “재앙(chance)”는 “재난(disaster)”를 의미합니다. “And dost with poison, war, and sickness dwell,”에서 “do(e)st”는 “do”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이고, “dwell”을 강조합니다. “And poppy or charms can make us sleep as well”에서 “양귀비(poppy)”는 “아편(opium)”을 의미합니다. “And better than thy stroke; why swell’st thou then?”에서 “swell’st”는 “swellest”에서 “e”를 뺀 것이고, 자만심으로 부풀어올라 우쭐거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대 죽음은 운명과 재앙과 왕과 절망적인 사람들의 노예이고, 독약과 전쟁과 질병과 함께 지냅니다. 여기서도 존 던은 기발한 발상(conceit, 奇想)을 제시합니다. 존 던은 죽음을 운명과 재앙과 왕과 절망적인 사람들의 주인(master)이 아니라 노예(slave)라고 말합니다. 존 던은 운명의 장난으로, 역병을 비롯한 재앙으로, 잉글랜드 국왕의 명령으로 주변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존 던 자신도 절망에 빠져 한때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했습니다. 독약을 마시고, 전쟁을 치르면서, 질병에 시달리다가 인간은 죽습니다. 죽음이 인간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휴식과 잠을 맞이할 뿐입니다.

아편과 마법도 우리를 잠들게 할 수 있고, 그대 죽음의 타격보다 나은데, 왜 그대 죽음은 우쭐거리는가? 여기서도 존 던의 기발한 발상은 계속됩니다. 죽음은 잠에 불과하고, 우리는 아편과 마법에 취해서도 잠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편과 마법에 취한 잠은 죽음이 주는 타격보다 낫습니다. 독약과 전쟁과 질병은 분명히 두렵지만, 들판에 핀 화려한 양귀비꽃이나 사람을 잠들게 하는 마법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두렵지 않은 잠이 잔혹한 죽음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신의 은총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에 “그런데, 그대 죽음은 왜 우쭐거리는가?(why swell’st thou then?)”는 수사 의문문(rhetorical question)이기 때문에, 우쭐거리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One short sleep past, we wake eternally”에서 “영원히 깨어난다(wake eternally)”는 다시는 잠들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And death shall be no more; Death, thou shalt die.”에서 “shalt”는 “shall”의 2인칭 단수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한숨 자고 나면, 우리는 영원히 깹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죽음, 그대가 죽을 것입니다. 존 던이 동생과 자식들과 아내를 비롯한 먼저 죽은 모든 사람들과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마지막 위로이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결심입니다.

“죽음이 죽는다”는 표현은 양립할 수 없는 말을 서로 짜맞추어 수사적 효과를 높이는 모순 어법(oxymoron)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46번에 “죽음이 한번 죽으면, 더 이상의 죽음은 없다(And death once dead, there’s no more dying then)”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서의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5장 26절과 54절(1 Corinthians15: 26, 54)에 “마지막으로 파멸될 원수는 죽음이다(The last enemy that shall be destroyed is death)”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렸다(Death is swallowed up in victory)”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대 희랍인은 시인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제작자(poietes)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시인은 자연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닌 시적 세계를 창조합니다. 현실을 초월한 메타 현실(meta-reality)인 문학은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을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시야와 능력을 제공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 성찰할 수 있습니다. 존 던의 성찰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성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921년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은 존 던의 시를 현대시가 지향해야 하는 모범을 보여준 시라고 극찬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1515년 외교적 임무로 네덜란드를 방문했고, “유토피아(Utopia)”를 쓰기 시작했지만, 영어로 쓰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초반만 해도 브리튼 섬은 고대 로마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가 말한 것처럼 세상 전체와 떨어진 거칠고 먼 곳이었습니다. 잉글랜드 사람들이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가서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배우고 풍습과 문화까지 익힌 이후에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유럽 지식인 공동체의 언어인 라틴어로 썼고, “유토피아”는 곧바로 유럽 대륙 전체에서 읽혔습니다.

하지만,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살았던 존 던은 구어체 영어로 시를 썼습니다. 1600년에도 잉글랜드는 여전히 유럽에서 외진 곳이었지만, 영어는 이미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되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크리스토퍼 말로와 킹 제임스 성서의 번역자들의 영어 리듬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을 전율시킵니다. 고대 희랍의 아테네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사회의 문화적 창조력은 한 사람의 일생 동안 꽃필 수 있습니다.

이 소네트의 해석은 “The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 Vol 1 (9th ed.)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2)”와 “John Donne: The Major Works edited by John Care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를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