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특별전형 서류전형에 관하여 - (4) 비교과 활동
21 Feb 2017(4) 교내 및 교외 비교과 활동(extra-curriculum activities)이란 지원 학생이 고등학교 시절 교내와 교외에서 학업 활동 이외에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활동한 것을 의미합니다. 비교과 평가 영역은 미국 대학의 입학 사정관 제도에서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것을 우리나라 대학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대학에서 입학 사정관 제도를 도입한 것은 성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한 그 전까지의 입학 제도 하에서 유대인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이 입학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이 입학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비교과 활동과 자기 소개서에 기반한 입학 사정관 제도는 미국 대학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정실에 기반한 입학이 일반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Yale 대학은 지원 학생의 부모가 Yale 대학 출신일 경우 상대적으로 쉽게 입학을 허가합니다. Yale 대학 입장에서는 동문의 자녀가 학업 성적이 다소 떨어진다고 해도,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을 쌓았으리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열된 대학 입학 경쟁을 완화하고 다양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입학 사정관 제도가 도입되면서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본래적인 의미에서 비교과 활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원 학생이 고등학교 시절 특히 교외에서 어떤 상을 수상하였는가를 살펴보는 수상 실적 활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교육부에서 교외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지 못하게 하자, 다시 교내 활동과 봉사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재외국민 특별전형 서류전형에서는 교내와 교외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비교과 활동 평가 영역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인 학생은 다른 세 평가 영역(내신 성적, SAT/AP/IB 성적, 현지어 구사 능력)이 모두 부족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세 평가 영역에서의 불리함을 만회할 정도의 뛰어난 비교과 활동은 국제 올림피아드(International Olympiad)나 Intel ISEF(International Science and Engineering Fair)에서의 수상 실적이나 자신이 관심 갖는 분야에 깊이 천착하여 좋은 저서를 출판하는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학생이라면 굳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재외국민 특별전형 서류전형이 아니더라도 전세계 대학 중에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나아가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의 인생을 잘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 재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당장 대학에 진학하여 무엇을 전공할지에 대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어떤 면에서는 이런 모습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결국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재외국민 특별전형 서류전형에서 비교과 활동 평가 영역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결정적인 평가 영역이 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 소개서에 서술한 내용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라는 측면이 더욱 중요합니다. 특히 SAT 성적은 있지만, IB나 AP 성적은 없는 학생의 경우 자기 소개서에서 서술한 내용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비교과 활동이 각별히 중요합니다.
비교과 활동이라고 해서 앞서 말씀 드린 국제 올림피아드(수학, 물리학, 화학, 정보, 생물, 천문, 지구과학, 철학, 지리,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이나 ISEF 같은 거창한 것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친구들과 함께 수학이나 과학 공부 모임이나 정치나 경제 공부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나름대로 에세이나 논문을 작성하여 학교 신문에 게재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친구나 후배에게 가르칠 수도 있고, 동아리 주최 연구발표회를 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은 학교의 후원이 필요하고, 학교에서 서류로 기록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제 학교(international school), 현지 학교(local school), 한국 학교(Korean school)를 막론하고 전세계 모든 고등학교가 졸업생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랍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이 정도의 동아리 활동은 이미 활성화되어 있고, 학교의 지원도 충분합니다. 또한 기존의 동아리가 아니라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비교과 활동 평가 영역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전세계 각지에서 모의 유엔(MUN, Model United Nations)이 없는 곳이 거의 없는 만큼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MUN 동아리가 있는 학생은 학교에서, 학교에 MUN 동아리가 없는 학생은 새로 동아리를 만들거나 학교 밖의 MUN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 외에 HOBY Leadership Camp나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세계 여러 대학에서 실시하는 고등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나 리더쉽 향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비교과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교과 활동에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모든 비교과 활동이 사회적이고 전공과 관련된 활동(social and major-related activities)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사회적이라는 뜻은 비교과 활동이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선후배와 친구라는 동료와 함께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는 의미와 사회적 유용함이나 사회적인 봉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 두 가지입니다. 동료와 함께 하면서 배울 수 있는 멤버쉽(membership)과 리더쉽(leadership), 그리고 아직 어린 고등학생이지만 사회로부터 받은 도움을 어떻게 되갚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봉사(service)가 대학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는 비교과 활동의 핵심입니다.
또한 비교과 활동이 지원 학생이 대학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점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학생 모두가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 분야에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좀 더 심화된 지식과 이해를 얻기 위해 공부한 과정이 자기 소개서의 핵심이고, 이를 입증하는 길이 IB 성적이나 AP 성적뿐만 아니라 비교과 활동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IB 성적이나 AP 성적이 부족하더라도 비교과 활동을 열심히 했다면 부족한 성적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수시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하려면 1차 서류전형에 통과해야 하지만, 2차 구술면접시험 성적이 좋아야 합니다. 구술면접시험은 지원 학생의 학문적 성숙도와 가능성도 평가하지만, 인성 부분도 심도 깊게 평가합니다. 특히 의과대학은 지원 학생의 자질과 적성과 인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다중미니면접”을 실시합니다. 이러한 구술면접시험과 다중미니면접은 많은 학원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시험 전에 벼락치기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내내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술면접시험과 다중미니면접을 가장 심도 깊게 충분히 준비하는 방법이 바로 비교과 활동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재외국민 특별전형 서류전형은 점차 이들 대학의 수시전형의 방식과 수준에 접근하고 있고,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서울대가 실시하고 있는 구술면접시험과 다중미니면접 역시 연세대와 고려대를 비롯한 여러 사립대학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비교과 활동이 단순히 서류전형의 네 가지 평가 영역의 하나가 아니라 구술면접시험과 다중미니면접을 준비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점이 이해될 것입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수시전형 서류전형의 대세는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입니다. 줄여서 학종이라고 불리는 전형은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내신 성적 1~2등급인 학생들에게 모든 교육의 혜택을 몰아주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신 성적이 4~5등급인 학생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학교 내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없고, 학교생활기록부도 내신 성적이 1~2등급인 학생에 비해 부실할 수 밖에 없는 부조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미비점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세상 그 어떤 것도 거저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외국민 특별전형 자격이 되는 많은 학생들, 다시 말해서 특례생들 중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수시전형이나 재외국민 특별전형 서류전형에 합격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시절 치열하게 공부하고 부지런히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하는 학생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특례생들은 그냥 하루 하루를 되는대로 보내면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영어나 현지어에 주눅 들어 수동적으로 하라는 것만 하고 맙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그 무엇이라도 좋으니 단 하나만이라도 붙잡고 미친 듯이 집중해보라는 것입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한다면 단순히 게임만 주야장창 하지 말고, 프로그래밍 기법과 코딩 기법을 익혀서 유치하고 단순해도 좋으니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려 보기 바랍니다. 만화를 좋아한다면 만화를 읽거나 보지만 말고 직접 만화를 그려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려 보기 바랍니다.
일개 고등학생이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린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지는 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시간 죽이기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활기와 열정이 바로 공부 덕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실제로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린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 덕분에 KAIST 컴퓨터 공학과나 Columbia 대학에 진학한 학생도 있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무엇도 할 수 없지만, 된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청소년과 청년이 지닌 최대의 특권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학생들 모두가 자신이 지닌 최대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의 학업 수준이 아무리 낮더라도 어제의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항상 길은 열리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합격보다 이러한 길 찾기가 입시에서 찾을 수 있는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한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