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대 문명과 라틴어
01 May 2023서구 근대 문명은 르네상스 휴머니즘(Renaissance Humanism)과 종교 개혁(Reformation)과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을 거치면서 형성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얼핏 보기에는 그리 대단치 않은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4세기 전후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 살던 사람들이 오래 전에 잊혀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학자들과 작가들의 저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는 11세기부터 아랍 지역과 인도 지역으로 이어지는 동방 무역을 독점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십자군 전쟁 동안 십자군을 중동 지방으로 안내하고 전쟁 물자를 공급했습니다. 중세 말기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는 유럽 전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선진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소위 책 사냥꾼(book hunter)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휴머니스트들은 처음에는 유럽 각지의 수도원과 교회의 도서관에 흩어져 있던 키케로와 리비우스와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와 루크레티우스 같은 로마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탓에 동로마 제국의 학자들이 서유럽에서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의 서적을 가지고 서유럽으로 넘어왔습니다. 휴머니스트들은 점점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와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과 작가들의 작품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초대 교부들과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스콜라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정당화하고 옹호하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저작을 이용했지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와 에라스뮈스 같은 휴머니스트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확립하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저작을 활용했습니다.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이 정립한 이상적인 인간은 라틴어와 고전 그리스어를 배우고,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는 인간이었습니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유럽 각지로 확산되고, 대학과 중등교육기관이 유럽 각지에 설립되면서 교육의 중심은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지 못한 중세 유럽을 하나로 통합한 것은 가톨릭 교회였고, 가톨릭 교회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1150년에 출범한 유럽 최초의 대학인 파리 대학을 비롯한 중세 유럽 대학의 공용어도 라틴어였고, 모든 유럽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가톨릭 교회에서 라틴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라틴어는 중세 유럽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나누는 신분의 상징이었고, 동시에 유럽 지식인의 공용어였습니다. 중세 유럽은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준수되는 사회였습니다.
중세 유럽의 농부들은 라틴어를 읽고 쓸 수 없었지만, 가톨릭 사제가 성찬식에서 라틴어로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corpus meum)”이라고 말하면 평범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기적을 매주 일요일마다 목격했습니다. 음악이 없는 세상에서 교회의 성가대가 라틴어 가사로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중세 유럽인의 귀에 더없이 감미로운 최고의 사치였습니다. 미술이 없는 세상에서 교회의 성화와 스테인드 글라스와 조각상은 유세 유럽인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라틴어는 중세 유럽인에게 구원에 이르는 언어였고, 바로 천국의 언어였습니다.
종교 개혁을 시작한 마르틴 루터는 “오로지 성서로만, 오로지 믿음으로만, 오로지 은총으로만, 오로지 그리스도, 오로지 신에게 영광(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Soli Deo Gloria)”이라는 방침을 라틴어로 내세웠지만, 라틴어를 모르는 평신도를 위해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라틴어의 전통에 기반한 독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킹 제임스 성경 역시 라틴어 전통에 기반한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라틴어 성경이 영어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라틴어 성경의 오류가 심각하다는 점이 드러났고, 성경의 번역자들은 그리스어 신약 성서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통용되던 아람어를 사용했지만, 이스라엘의 고유한 언어이자 구약 성서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또한 헬레니즘 시대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인 그리스어도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뒤 300년이 지나면서 기록되기 시작한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 성서는 모두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어 신약 성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은 아람어와 히브리어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유럽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인 영국에 상대적으로 늦게 전파되었지만, 영국 사람들 역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중기 영어(Middle English)가 근대 영어(Modern English)로 전환되는 시기에 살면서 초기 근대 영어(Early Modern English)를 확립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셰익스피어 역시 라틴어의 달인이자 휴머니스트였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대학에서 공부한 적이 없지만, 고향 마을에서 다녔던 문법 학교(grammar school)에서 당대 영국 최고의 휴머니스트에게 라틴어를 배웠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문법 학교에서 배운 라틴어는 지금 옥스퍼드 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전학부(Department of Classics)에서 가르치는 라틴어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습니다.
영문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제프리 초서는 고대 영어(Old English)의 전통이 아닌 라틴어와 프랑스어의 글쓰기 전통에 기반한 중기 영어(Middle English)로 “캔터베리 이야기”를 썼습니다. 셰익스피어 역시 모든 희곡과 소네트를 라틴어의 글쓰기 전통에 따라 썼고, 자랑스럽게 라틴어 글쓰기를 모방했습니다.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와 셰익스피어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근대 영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아버지로 삼고, 중기 영어를 어머니로 삼아 태어났습니다. 영어뿐만 아니라 모든 유럽 근대 언어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아버지로 삼고, 지역 방언을 어머니로 삼아 태어난 자식입니다.
15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의 중등학교 라틴어 교사는 인간의 엉덩이는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신념(?) 아래 학생들이 라틴어 문법 규칙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라틴어 텍스트를 통째로 암송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영국과 유럽 각지에서 자녀를 중등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자녀들이 집에서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지금도 영국과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문법 학교는 라틴어 문법을 배우는 중등학교라는 의미입니다.
과학 혁명의 정점에 있는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담은 책을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라틴어 제목을 붙여 라틴어로 출판했습니다. 19세기까지 유럽에서 달성된 주요한 과학적 업적은 라틴어로 출판되었습니다. 라틴어가 유럽 과학계 전체의 공용어이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초서와 셰익스피어 이후 영국 학자들과 작가들이 누가 라틴어를 더욱 잘 모방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했듯이 신대륙에 살았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역시 건국 문서(founding documents)에서 라틴어를 모방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영국군 장교가 영어로 식민지 민병대의 행방을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않았던 하버드 대학 교수가 라틴어로 같은 질문을 받고 라틴어로 민병대의 주둔지를 말해주었을 정도로 신대륙 미국에서도 라틴어는 절대적인 권위를 누렸습니다. 미국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 역시 “자서전”에서 가난 때문에 학교는 2년 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까지 공부한 뒤 라틴어를 쉽게 익혔다고 자랑할 정도입니다.
1417년 포지오 브라치올리니(Poggio Bracciolini)는 자신이 모시던 대립 교황 요한 23세가 콘스탄츠 공의회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출세도 막혔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포지오 브라치올리니는 이탈리아로 돌아가 새로운 주인을 찾지 않고, 독일 남부의 여러 수도원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수도원에서 1,000년 동안이나 잊혀졌던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쓴 “자연의 과정에 관하여(De Rerum Natura)”라는 책을 찾아냈습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우주와 인간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의 이합집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특별한 계획이나 질서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포지오 브라치올리니는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필사했고, 포지오 브라치올리니의 필사본은 인쇄술이 보급되어 “자연의 과정에 관하여”가 출판될 때 사용되었습니다. 루크레티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학자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이론에 따라 우주와 인간은 원자가 흩어지면 소멸하고, 영혼 역시 원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후 세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연의 과정을 알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절제로 달성한 현재의 평온한 쾌락과 행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결론이었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과 세상의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옹호하는 스콜라 신학의 정교하고 웅장한 주장은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소박하지만 합리적인 주장에 맞설 수가 없었습니다.
루크레티우스의 책은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아이작 뉴튼과 찰스 다윈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에피쿠로스주의자로 자처했고, 행복의 추구(pursuit of happiness)를 생명(life)과 자유(liberty)와 함께 창조주가 부여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예나 대학에 제출한 박사 학위 청구 논문의 제목도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였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고 기독교를 옹호하는 중세 스콜라 신학 체계를 집대성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탐욕스러울 정도로 잊혀진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수집하고 읽었던 르네상스 휴머니스트 포지오 브라치올리니는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통해 근대 문명과 근대적 인간의 전범을 제시했습니다.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이 꿈꾸었던 근대의 청사진은 300년이 지난 뒤에 계몽주의(Enlightenment)에 의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역사와 사회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가 1750년 전후에 일어난 일련의 정치 혁명(political revolution)과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라는 두 가지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미국 혁명(American Revolution)과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과 아이티 혁명(Haitian Revolution)과 남아메리카 혁명(Creole Revolution)과 식민지의 반제국주의 운동(Anti-imperialist Movement)은 모두 서유럽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에 기반하고 있고,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의 발전과 더불어 아메리카 대륙의 농업 생산 덕분에 가능했던 산업 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곧바로 전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산물인 보수주의(conservat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와 급진주의(radicalism)의 경쟁은 중도자유주의(centrist liberalism)로 수렴되었고, 전세계로 확산된 산업화(industrialization)와 근대화(modernization)는 공산주의(communism)에 대한 자본주의(capitalism)의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정치 이념으로서 중도자유주의는 근대 세계의 가장 큰 병폐였던 노예 제도(slavery)를 끝내고, 인권과 시민권을 보편화시켰고, 식민지가 독립하여 국민 국가(nation state)로 재탄생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덕분에 20세기 인류는 전례 없는 진보와 유례 없는 복지를 누렸습니다. 무엇보다 영아 사망률이 급감했고, 출생률이 오르고 사망률이 떨어지면서 전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중도자유주의는 전세계에 만연한 차별(discrimination)과 불평등(inequality)을 해소하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산업화로 인한 기후 변화(climate change)는 기후 위기(climate crisis)로 악화되었지만, 인류는 여전히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풍족함과 안락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많은 나라에서 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를 추월하는 고령화 현상과 급격한 인구 감소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에 기반한 서구 근대 문명이 시작된 이후 3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많은 사람이 동의합니다. 새로운 전환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시작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라는 세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근대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은 포지오 브라치올리니가 찾아낸 라틴어로 쓰여진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0대 후반의 포지오 브라치올리니가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로 왔을 때,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읽고 쓸 수 있다는 사실과 필사 능력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지오 브라치올리니는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르네상스 시대 가장 저명한 휴머니스트이자 책 사냥꾼이 되었고, 나아가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인간의 전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근대 이후의 시대를 여는 새로운 인간에게도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는 능력이 필요할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국의 옥스브리지와 미국의 아이비 플러스에서는 미완의 근대를 완성하거나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사람은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는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새로운 전환을 담당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충분조건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은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는 능력입니다.
인공 지능(AI)이 인간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21세기에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우고, 라틴어 고전과 그리스어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문제 의식을 지니고 고전을 읽을 때 새로운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 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함은 바로 시대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고, 고전을 읽으면서 고전 속에서 해답을 찾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2,500년 동안 인류 문명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정작 인간 자체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2,500년이 지나도 인간 자체는 거의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지오 브라치올리니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알고 싶은 학생은 Stephen Greenblatt, “The Swerve: How the World Became Modern”(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11)을 참조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