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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글 잘 쓰는 법 (3) - 표현이란 무엇인가

좋은 말과 글은 주장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논리적 뼈대와 글을 읽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사적 근육을 필수적으로 적절하게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뼈와 근육이 있다고 해도 피부가 없으면 생명이 유지될 수 없듯이 설득의 토대(the foundation of persuasion)인 논리와 설득의 기술(the art of persuasion)인 수사는 궁극적으로 표현(representation)이라는 옷을 입고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어로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완성이면서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부가 한 생명체의 경계를 나타내듯이 표현은 자신만의 말과 글을 드러내는 경계이자 특징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 우리의 취향이나 계급이나 신분을 드러내듯이 말과 글의 표현은 말하는 이와 글쓴이의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문제는 논리와 수사와는 달리 표현에는 딱히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점입니다. 표현을 달리 말하면 문체(style)라고 하는데, 이 “style”이라는 말은 “철필, 필체, 문제, 양식”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점토판(clay tablet)에 글을 쓰는 도구가 누군가가 글을 쓰는 독특한 버릇으로 확대되고, 나아가 하나의 예술 사조(artistic movement)를 의미하는데 이른 것입니다. 어휘의 외연이 확장되면 내포가 중첩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style”이라는 말의 의미가 아주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는 해도 대체로 표현, 혹은 문체라는 것은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나 양식이라는 점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나 양식을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자신만의 표현과 문체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해도 화가마다 다른 그림이 나오고, 똑같은 음표를 사용해도 작곡가마다 다른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똑같은 어휘와 문장 구조를 사용해도 작가마다 다른 표현과 문체가 나옵니다.

심지어는 특정한 문장에서 어휘의 배열을 바꾸어 놓거나, 단 하나의 어휘를 동의어로 바꾸어도 글맛이 달라집니다. 글맛이 달라지는 것은 표현과 문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표현과 문체가 아주 조금만 바뀌어도 글을 읽는 누구라도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맛을 살리는 표현과 문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표현과 문체를 가르치고 배울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은 인간 지성의 한계라기 보다는 예술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간단한 문장을 가지고 표현과 문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봅시다. “지금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시기이다(These are the times that try men’s souls.)”라는 문장은 1776년 12월 23일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 미국 독립 혁명을 고무하기 위해 쓴 정치 팸플릿인 “미국의 위기(The American Crisis)”의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명확합니다. 그 명확함은 무엇보다 짧고 쉬운 단어의 사용에서 유래하고, 그 명확함으로 지금까지 널리 기억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애브래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남북전쟁(the Civil War)이 끝나기 전인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니아주 게티스버그 국립 묘지에서 행한 연설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 we can not consecrate — we can not hallow —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남북전쟁 중에 죽거나 부상 당한 사람들을 기리면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자유와 평등의 구현체로 제시한 이 연설은 내용의 깊이는 물론, 논리와 수사와 표현의 세 영역에서 모범을 보여줍니다.

먼저 87년 전 건국된 미국이 어떤 신념에 바탕을 두었는지를 묘사한 다음, 남북전쟁의 의미는 이 신념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도 헛된 죽음을 맞은 것이 아니라 위대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신성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국립 묘지는 전쟁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그들이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건국과 남북전쟁이 모두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세우기 위함임을 강조하면서 남북전쟁 이후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서 이러한 정부가 지구 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여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는 신념이 미국을 넘어 전세계에 퍼져나갈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21세기에 접어든지 17년이 되었지만, 이 예언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하지만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이 정도로 조화시켜 제시한 정치적 언명도 거의 없습니다.

이 연설문에서 애브래햄 링컨은 “dedicate”라는 단어를 6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에 헌신한다는 뜻으로, 그 다음도 같은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전장의 일부를 국립 묘지로 바친다는 뜻으로 사용했고, 그 다음도 마찬가지로 이 땅을 바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성되지 못한 일과 위대한 사명에 헌신한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게티스버그 국립 묘지에 와서 추모를 한다는 것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신념에 따라 남북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많은 이들의 희생을 기린다는 것이고, 그러한 추모는 곧바로 그들이 완성하지 못한 위대한 사명을 계속해서 떠맡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을 추모하면서 그들이 추구한 이상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두 헛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단순한 언어로 쉽게 말한 것 같지만, 애브래햄 링컨은 자신의 연설 속에 치밀한 논리와 수사를 표현으로 구체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 연설을 들은 모든 사람들과 이 연설을 읽은 모든 사람들은 애브래햄 링컨의 언어의 마술에 걸려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미국이 남북전쟁의 상처를 딛고 온전한 국가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애브래햄 링컨의 연설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깊게 생각하고 쉽게 말하고 쓰라는 것입니다. 관련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찾아보면서 다방면에 걸쳐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생각은 명료해집니다. 그리고 생각이 명료해지면, 표현 역시 간명해집니다. 그 간명한 표현이 바로 최고의 논리와 수사를 담는 그릇입니다.

토마스 페인과 애브래햄 링컨 모두 깊게 생각하여 명료함에 이르렀고, 그 명료한 생각을 간명한 표현으로 표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문입니다.